굽은 등 굽은 손가락, 성황당은 알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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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등 굽은 손가락, 성황당은 알고 있으려나
  • 최재길 시민기자
  • 승인 2023.09.28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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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야화(野生野話)] 신수도
멀리서 바라본 신수도. 낯선 설렘이 바다를 품은 길 위에 여행자의 호기심을 얹는다.
멀리서 바라본 신수도. 낯선 설렘이 바다를 품은 길 위에 여행자의 호기심을 얹는다.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잠시 잠깐의 뱃길. 꽁무니에서 멀어지는 포말을 바라본다. 신수도 선착장엔 빨갛고 하얀 두 개의 등대가 반긴다. 남으로 굽어보는 언덕엔 해풍으로 엮은 집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다. 그 너머론 와룡산이 든든한 배경으로 서 있다. 신수도는 또 어떤 풍경, 어떤 식물들이 반겨줄까? 낯선 설렘! 바다 품은 길 위에 여행자의 호기심을 얹는다. 

몽돌해변 물비늘
몽돌해변 물비늘

찰랑! 차알랑! 차르르~ 파도가 속삭이는 몽돌해변. 소리마저 몽글몽글 귓가에 맴돈다. 고개 들어 바라보는 남쪽 바다는 물비늘로 고웁다. 보드레한 물빛! 아침 햇살을 건져 올린 물비늘엔 아련한 기억 너머의 따스함이 있다. 빼꼼 고개를 내민 갯바위도 온기를 나누니, 지나가던 갈매기 한 마리 온기를 물어다 나른다. 세상 시름 놓아버릴 고요한 충만의 순간! 한 눈 감고서 반짝이는 동쪽 물빛에 선다. 해안가 산비탈에는 검팽나무가 살고 있다. 열매가 까맣게 익는 우리 고유종이니 무척이나 반갑구나! 길섶에는 참으아리가 하얀 무리를 이루어 싱그러운 인사를 한다. 무성한 칡꽃은 달콤한 꽃내음을 풍기니. 야생의 향기 오랜 기억에 남는다.

검팽나무
검팽나무
여우팥
여우팥

남쪽 구릉에 자리 잡은 대구마을에 들었다. 비좁은 비탈길-한가로운 돌담에는 여우팥이 덩굴로 모여 있다. 가을하늘-따가운 햇볕 아래 별처럼 빛나는 노란 꽃송이들! 금방 소풍 나온 햇병아리 같다. 그 귀여운 얼굴에 쪼르르 다가서니 아무렇게나 쌓은 돌담 위로 파란 하늘이 빙긋이 웃는다. 바닷가 입구에는 아담한 돌산, 성황당이 있다. 대나무 두 개를 꽂고 새끼를 이어놓았다. 금줄인 것 같다. 시멘트로 축대를 쌓아 제단도 마련해 두었다. 여기 거친 바다에서 생계를 이어온 뱃사람들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했을 터다. 바닷물이 철썩거리는 지척의 제단이라 더욱 실감이 난다. 나도 물 한 모금 하면서 쉬어가야겠다. 바위 그늘에 앉아 바다 건너 풍경을 바라본다. 남해 창선의 산들이 올망졸망 늘어섰다. 오른쪽으로는 빨간 삼천포대교가 띄엄띄엄 섬들을 절묘하게 이어놓고 있다. 나직한 파도 소리 귓가에 찰랑인다. 파란 하늘이 열리고, 선선한 갯바람에 가을이 달려온다.

성황당
성황당

방파제를 따라 신수마을 본동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상징의 빨간 공중전화통이 푸른 바다를 빤히 쳐다본다. ‘시와 문학이 있는 섬 신수도’, 이마에 달고 있는 글귀다. 방파제 벽에는 남녘의 바다를 읊은 시인들의 시가 쭈욱~ 걸려 있다. 김학명 시인의 시에는 섬 아지매들의 억척스러운 삶이 똑똑 묻어난다. 배 타고 ‘갯비릉 먹거리’를 이고 나와 ‘동서동 선착장’에 앉아 팔던 아낙들의 굽은 등 굽은 손가락! 성황당은 알고 있겠지?

삼천포초등학교 신수도 분교장에 들었다. 6개월 전 마지막 졸업생을 내보내며 폐교되었다는구나! 교정엔 몸뚱어리만 남은 늙은 플라타너스 한 그루. 수피 한 조각에 살아남은 가지 몇 개. 슬픈 뒷모습이다. 하지만 여기 새겨볼 사연이 하나 있으니, 우보 박남조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야학을 열어 주민과 학생들을 가르쳤다. 분교장 언저리에는 선생님의 시비(詩碑)가 서 있다. ‘시아섬 등 외소나무’ 노산 앞 시아섬 등 / 홀로 늙는 외소나무 // …… 한낮에 잠든 바다 / 낚시배도 조으는데 // 어디서 노래가락 / 외소나무 쓰다듬고 // 이따금 / 썰물 스치며 / 갈매기는 날은다.

장구섬
장구섬

홀로 늙는 외 소나무는 거친 세상에 교육의 등불을 밝히신 당신이겠지요? 삼천포 선착장으로 되돌아 나오는 길목에 장구섬을 바라본다. 야트막한 봉우리 두 쪽이 마주 보며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데, 두들기면 금방 구슬픈 가락이 울려 퍼질 것만 같다. 긴장감은 거친 삶을 살아내는 힘이 되었을까? 아름다움의 정수를 뽑아내어 시와 문학의 섬이 되게 했을까? 신수마을 포구, 바닷물 찰랑이는 살림집 대문간에 붉은 웃음 웃는 채송화야~!

채송화
채송화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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