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야생야화, 그 1년의 달리기가 끝에 다다랐다. 그 마지막을 민재봉과 새섬봉에서 맞는 이유는 와룡산의 최고봉이 뒤바뀐 사연과 상징성을 돌아보기 위함이다.
등룡사 아래 차를 세우고 잠시 숲길을 걸어 도암재에 도착. 왼쪽으로 새섬봉 가는 1km 거리는 가파르게 곧추섰다. 오르는 길은 숨이 턱턱 막히지만, 누군가 공들여 쌓은 돌탑, 기암의 아름다움과 남해안 다도해 조망! 그리고 드문드문 풀꽃들이 반겨주니 심심할 겨를이 없다. 몇 번의 숨을 몰아쉬고서 정성스러운 돌탑지대에 섰다.

사람들은 오래된 무의식의 행동으로 주요한 장소에 크고 작은 돌탑을 쌓는다. 하다못해 돌 하나라도 얹는다. 이렇게 돌탑을 쌓는 의미는 무엇일까? 돌탑은 경계를 표시하는 동시에 길을 안내하는 현실적 역할을 해왔다. 하늘 향한 제의의 성격도 있었다. 기초부터 하나씩 쌓아 올라가는 단계적 성장의 의미도 지닌다. 세상일은 수많은 중첩과 반복을 통해 완성된다. 불교에서 탑을 세우는 의미도 마찬가지다. 불국사의 다보탑은 깨달음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한층 한층 오를 때마다 안정을 이루며 정교하고 원만하게 변하는 형태는 수행의 차원을 나타낸다. 깨달음도 기초부터 쌓아가야 한다는 설법이다. 세상에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일은 없다. 반면 석가탑은 하늘에서 바로 내려오는 과정을 상징하기 때문에 단순하다고 들었다. 오르기는 어렵고 내려서기는 쉬운 모양이다.

이제 또 출발. 등산로에서 살짝 비켜 있는 왕관바위는 훌륭한 쉼터이자 조망대다. 지난봄 산철쭉이 피어났던 바위틈에 하얀 구절초가 고귀한 얼굴로 반긴다. 절벽 가에는 층꽃나무가 층층으로 피어났다.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 층층이 쌓아 올린 보라색 꽃송이, 예사롭지 않구나! 작은 곤충들이 찾아와 풍성한 가을을 마음껏 즐기고 간다. 코앞에는 새섬봉이 굽어보고 있다. 파란 하늘 아래 빼어난 자태를 드러내는 기암! 와룡마을은 발아래 납작 엎드렸다. 눈앞에 드러난 목표지점은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잠시 잠깐 험한 바위벽을 건너 새섬봉 정상에 섰다. 먼저 눈길을 끄는 곳은 정상 표지석. 먼 옛날 와룡산이 바닷물에 잠겼을 때 새 한 마리만 앉을 수 있어 새섬봉이 되었단다. 험한 바위 봉우리의 거칠고 비좁음을 재치 있게 표현해 놓았구나! 새섬봉은 넓은 품은 없지만, 바위로 뭉쳐 웅비(雄飛)하는 힘이 모두를 감탄케 한다.

멀리 주변 경관을 둘러본다. 동북쪽으로 민재봉이 달덩이 같은 둔부를 드러내고 있다. 컨디션이 좋으니 민재봉까지 능선길을 걸어 보자. 그러면 고향(사남 죽천)의 앞산 봉대산에서 와룡산 능선을 모두 잇게 된다. 그동안 구간별로 다녀왔으니, 끊어진 것을 이음으로써 완성의 의미를 지닌다. 내 발로 걸어서 가 본 길에는 그리움도 남는다. 능선에는 가을의 대명사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길 앞을 반긴다.

헬기장에 다다르니 누운 듯 가지를 펼친 소나무 한 그루 정겹다. 그 아래 산행객이 홀로 점심을 먹고 있구나! 주변에는 노란 미역취 한 무리와 흔한 쑥부쟁이가 뒤엉켜 가을 냄새를 물씬 풍긴다. 새섬봉을 바라보는 길가엔 억새들이 줄을 이어 피어나고~. 저 멀리 햇살에 반짝이는 남녘의 바닷물도 억새꽃을 피웠구나! 이따금 용이 내려와 목욕하는 와룡저수지 너머론 황금들판이 열렸다. 이 순간 무얼 더 바라겠는가?

민재봉은 후덕한 어머니 같고, 새섬봉은 올통볼통 힘을 지닌 아버지 같다. 용들의 고향 와룡산은 음기와 양기를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지. 민재봉(799m)은 오랫동안 주봉이었다. 그러나 2009년 해발 고도 확인 결과 새섬봉(801.4m)이 더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주봉의 자리는 뒤바뀌었지만, 후덕한 민재봉의 역할과 위상은 여전하다. 그래서 상봉으로 남게 되었으니. 조화를 이룬 와룡은 사천 시민을 끌어안고 상서롭게 누워있구나! <연재 끝>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