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되니 애나 어른이나 다 같이 가갸 거겨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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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되니 애나 어른이나 다 같이 가갸 거겨 했지”
  • 하병주 기자
  • 승인 2023.11.09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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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박연묵교육박물관이 품은 이야기 ②눈물 젖은 한글 교재

일본어만 배웠던 일제 강점기에 한글 모르는 사람 ‘수두룩’
미군정이 만들어 보급한 국어 교재로 한글을 다시 배우다
까만 덧칠로 가려진 교과서…거기엔 누구의 어떤 글이?
박연묵 관장이 중학교 시절에 사용했던 국어 교과서. 일부 내용을 읽을 수 없게 까맣게 덧칠을 한 모습이다.
박연묵 관장이 중학교 시절에 사용했던 국어 교과서. 일부 내용을 읽을 수 없게 까맣게 덧칠을 한 모습이다.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박연묵 관장은 1934년생이다. 사천시 용현면 신복리 신복마을에서 태어나 지금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 1943년 아홉 살 되던 해에 지금의 용현초등학교(22회)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엔 초등학교에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는데, 본인은 부모님 덕에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땐 초등학교도 선발을 해서 들어갔어. 동네에 내 또래가 셋 있었는데, 나만 들어갔거든. 그만큼 어려웠지. 전기도 없을 때고. 학교에는 교장 하나에 교사 여섯이 있었는데, 무서웠지. 제일 힘든 게 우리말을 쓰면 안 된다는 기라. 무조건 일본말만 써라 캤어. 한번은 등굣길에 사람이 툭 튀어나와 놀래켰는데, 선생이라. 일행 중에 한국말을 쓴 사람이 누구냐고 다그치더마.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엄혹한 시절이었다.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가운데, 식민지 조선을 향해선 내선일체를 강요하며 민족말살정책을 펴던 시기다. 우리말을 쓰지 못했으니 우리글은 오죽했을까. 박연묵 관장은 해방이 될 때까지 한글을 깨우치지 못했다고 한다.

“학교에선 한글을 가르쳐 주지 않았어. 어른 대부분도 한글을 모르긴 마찬가지야. 그런 상황에서 해방이 되니까 아(애)나 어른이나 한글을 같이 배웠지. 기역, 니은, 디귿, 리을, 가갸, 거겨, 고교, 구규 하면서. 아는 학교에서, 어른은 일 마치고 밤에 마을회관에서. 한반도 전체가 기역, 니은이라.”

박연묵 관장은 그때 썼던 한글 교재를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교재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부터는 미군정에서 만든 한글 교재가 보급되었단다.

일제가 물러난 뒤 미군정에서 만든 초등학교 교재.
일제가 물러난 뒤 미군정에서 만든 초등학교 교재.

“통치를 하려니까 사람들이 말귀를 알아들어야 하겠거든, 그때 미군정에서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교재를 만들어 준기라. 그런데 무료가 아니라. 돈을 받고 파는 거였어. 학급에 반쯤 갖고 있었을까? 그러니까 나눠 보고 베껴 쓰고 그랬지.”

그가 보관하던 책은 이제 진주교육대학교의 박연묵 기증 전시실에 가 있다. 1940년대 미군정 시기에 만든 교재뿐 아니라 그가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사용했던 온갖 교과서가 즐비하다.

박연묵 관장이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사용했던 교과서.
박연묵 관장이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사용했던 교과서.

그중 독특하게 눈에 띄는 책이 하나 있다. 정음사에서 펴낸 책으로, 조선어학회의 정인승 씨가 엮은 중등학교 국어과 참고서이다. 단기 4282년에 문교부가 인정했다는 정보가 함께 담겨 있다. 

조선어학회의 정인승 씨가 엮은 중등학교 국어과 참고서.
조선어학회의 정인승 씨가 엮은 중등학교 국어과 참고서.

이 책에는 열아홉 편의 글이 실렸는데, 지은이로는 안창호, 채만식, 방정환, 주요섭, 현진건, 변영로 등이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그중 네 편의 글은 까맣게 먹칠이 되어 글의 제목도 지은이도 알아볼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차례에서도 본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박연묵 관장은 이렇게 회상했다. 

“책을 받았을 때부터 까맣게 칠이 되어 있었어. 그래서 내용을 몰라. 아마도 추정하기에 책이 나온 뒤에 문제가 생긴 사람의 글인가 봐. 월북을 했다든지 말이야.”

까맣게 가려진 곳에 누구의 어떤 글이 실렸던 것일까. 관련 분야 전문가라면 금방 알아낼 일이다. 다만 우리가 이 책으로 알 수 있는 건 ‘그 옛날 어느 시기에는 학교가 교과서에 실린 일부 글을 가린 채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는 씁쓸한 사실이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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