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속도로영업소 5배 뻥튀기.. 장애인단체 “상당히 불쾌”
부정사용자로 둔갑시켜도 당사자 확인할 길 없는 점 악용
이에 대해 요금소 관계자는 “그냥 실적 쌓기 용이었다”고 고백하지만, 장애인 관련 단체에서는 “이런 왜곡된 통계정보가 정부의 여러 장애인 관련 정책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장애인감면카드 부정사용자를 억지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주장은 얼마 전 고속도로의 한 영업소가 하이패스 이용률을 고의로 부풀렸다는 주장이 나온 곳과 같은 곳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하이패스 이용률 부풀리기가 지난해 12월에 집중된 것에 비해 감면카드 부정사용자 부풀리기는 평소에 늘 있어 왔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제보한 사람 역시 전직 요금수납원 A씨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장애인감면카드 부정사용자를 부풀리기 했을까?
A씨에 따르면 정상적인 장애인감면카드 이용차량에서 50% 할인된 통행료만 받고 통과시킨 뒤, 남은 50%의 통행료를 영업소가 메우면서 해당 차량을 감면카드 부정사용자로 등록시켰다. 이때 발생하는 통행료 손실은 요금소를 관리하는 외주업체가 전액 부담했다.
이렇게 만들어낸 감면카드 부정사용자는 정상적인 적발 건수보다 5배쯤 많았다고 한다.
A씨가 근무했던 영업소의 1일 통행량은 평균 700대 정도로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하루에 2건 씩은 꼬박꼬박 부정사용자를 단속한 것처럼 조작해 1달에 60건 정도 실적을 올렸다는 얘기다. 그 가운데 실제 부정사용자 단속 건수는 10건 안팎이었다고 진술했다.
A씨는 “그동안 ‘근무 중 알게 된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는 내용의 근무서약서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지만 알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감면카드 부정사용자 부풀린 이유 ‘실적’ 말고 없나
A씨가 근무하던 고속도로 영업소 운영을 맡고 있는 외주업체 측에 확인한 결과 이 역시 상당부분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업체 사장은 이 일에 도로공사 측 입장이 반영됐으며, 다른 업체도 비슷한 상황일 것으로 추측했다.
“일부러 내 돈 들여가며 왜 (부정사용자 부풀리기를)하겠나? 사실상 회사 입장이 반영된 결과다. 다른 영업소도 비슷한 상황일 것으로 안다.”
하지만 외주업체 사장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도로공사 측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애매한 입장을 밝혔다.
한국도로공사 경남지역본부는 18일 관련 질의에 대한 회신에서 “감면카드로 통행료 정산시, 본인 미탑승 및 차량번호 상이 등의 부당사용의 경우, 관련 법령에 따라 정상 통행료를 징수하고 있으며, 이는 요금소 근무자가 육안으로 확인하여 처리를 하는 것으로, 부당한 업무처리가 있었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문제의 외주업체 사장은 ‘단순한 실적 쌓기’였다고 설명한다.
“어딜 가나 실적관리 때문에 문제다. 화물차량의 덮개불량, 적재불량을 일정 정도 해야 하는 것과 같다. 부정 적발 건수가 많으면 그만큼 열심히 일한 게 되지 않나.”
이는 영업소를 운영하는 외주업체들이 주기적으로 도로공사와 재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임을 비춰볼 때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추측만 할 뿐이다.
다만 2009년10월 국정감사에서 도로공사가 한나라당 정희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가 재미있다. 요약하면, 장애인과 국가유공자 등이 사용하는 고속도로 감면카드 부정사용자가 몇 년 새 크게 늘었다는 얘기다.
이 자료는 부정사용자 적발 건수가 2004년에 1만7666건이던 것이 2008년에 9만9133건으로 급증했으며, 2009년8월 기준으로도 10만 건에 육박했음(9만9824건)을 보여 준다. 5년 새 5.6배, 가히 폭발적 증가다.
실제로 2005년6월까지는 부정사용자로 발각될 경우 경고조치 후 고의성 여부에 따라 일시적 카드사용 정지 또는 영구제재를 가할 수 있었다. 반면 그 이후로는 정상 통행료만 받을 뿐 다른 조치가 없다.
제재조치 사라진 점을 악용한 것은 되레 도로공사?
그러나 돌이켜보면 감면카드 부정사용자가 급증한 것은 제재조치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가짜 부정사용자를 쉽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얘기도 될 수 있다.
즉 제재조치가 있을 때는 감면카드 발급 당사자에게 위반 사실을 반드시 통보하지만, 제재조치가 사라지면서 당사자에게 알릴 필요 또한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감면카드 사용자가 정상적으로 고속도로 요금소를 통과한 뒤 도로공사 또는 영업소에서 부정사용자로 등록하더라도 당사자는 전혀 모르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일부 영업소에서 드러난 점을 확대 해석하면, “제재조치가 사라진 것을 악용하는 쪽은 오히려 도로공사거나 일부 영업소들”이라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어쨌거나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장애인단체 쪽에서는 상당한 불쾌감을 표하고 있다. 사천의 한 장애인단체 관계자는 “부정사용자 등록으로 당장 손해를 보는 일은 없다지만 일종의 범법자로 모는 것 아니냐”며 “생각할수록 불쾌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감면카드 부정사용자가 급증한다며 정부와 도로공사로부터 장애인들이 일방적으로 몰렸다. 카드를 내준 이상 관리책임이 그들에게 있음에도 장애인들에게만 그 책임을 묻고 있는 꼴이었다. 이제야 진정한 부정사용자 급증 사유를 알 것 같다.”
그는 또 “단순히 ‘실적 쌓기’였다고는 하나 왜곡된 정보가 향후 장애인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른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발효로 여러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하는데, 부정적 이미지 확산에 활용됨으로써 제도의 축소를 가져올 가능성이 많다는 설명이다.
장애인감면카드 부정사용자를 고의로 부풀리기 한 이번 일에 도로공사가 직접 개입했는지 아니면 일선 영업소에서 그야말로 경쟁하듯 ‘실적 쌓기’ 차원으로 진행했는지 현재로선 정확히 알 수 없다.
비록 부정사용자로 몰린 감면카드 대상자들에게 당장의 큰 피해가 없다고 하지만 장애인들의 자존심과도 맞물린 문제인 만큼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그래야만 “왜 장애인 통행료 감면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고 우리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도로공사 일각의 볼멘소리도 더 떳떳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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