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영사기 속 17년 전 내 젊은시절이 버걱버걱 돌아간다

동동주 ⓒ뉴스사천 자료사진
연일 내리는 비 속으로 친구가 다녀갔어요, 흔적없이.

‘암중모색’이라고 다른 선후배에게 말하지 말라며 뇌종양이라고 그렇게 서툰 말을 하던 그 친구.

“내 좋아지면 주적주적 비 내리는 날 ‘느티나무’에서 칼국수로 배 채우고 막걸리에 사이다 부어 그 할매 나가라고 구박할 때까지 마시지, 응 친구야”

그랬습니다.

그 친구 암중모색에서 끝내 길을 못 찾아 저 하늘로 갔습니다.

오늘 월요일부터 출근한 직장 지인들과 저녁에 밥 먹으러 갑니다.

‘할매동동주’로

동동주 몇 잔과 까맣게 그을린, 김이 모락모락 숨쉬는 솥에 지은 밥이 통째로 테이블 위에 떠-억하니 ‘나 잡숴요’하고 있네요.

뚝딱 밥 한 그릇하고..

아픈 사람 다시는 아파하지 말라고, 설운 사람 더 서럽지는 말라고, 그저 생긴 대로 저 대로 살라고, 네가 곱다고 이쁘다고 위안이라도 하는 허름한 그 곳, 너무 귀한 몸이라 너무 잘난 몸이라 들어오면 송구스러운 그 곳에서 전 뭘 봤을까요? 사천에 살면서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 곳에서.....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람을, 술을 그리워하며 살았던 제 모습을 보았을까요?

아님 그 친구 없이 홀로 있는 제가 보였을까요?

아니라고 아니라고 도리질 하면서도 술 익는, 술 마시는 그 분위가 너무도 익숙해서였을까요?

다 보여주지도 못하면서 그냥 좋네요, 뿌연 연기를 내며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버스 속 한 소녀의 도시를 향한 막연한 설레임.....

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은 졸지도 않고 계속 흐르고.....

그래도 아이들은 챙겨야 하기에 기어코 일어섭니다.

이것만으로도 정말 제게는 행복이라고,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행복한 웃음을 보여줄 수 있으니 좋다고 제 스스로 위안하며 택시를 타고 아이를 만나러 갑니다. 엄마가 직장을 다녀서 더 많이 안아주고 챙겨 줄 수는 없지만, 엄마가 가진 세상을 향한 믿음을 아이가 보고, 엄마가 그리는 환한 미소를 아이는 배우겠지요. 그래서 엄마도 아이도 끝내 행복하겠지요. 이런 대책없는 믿음들이 제게는 위안이네요, 희망이네요.

예전의 그‘느티나무’가게는,

유명 피자 체인점 가게로 바뀌고, 모든 게 제가 다니던 90년대와는 다르죠.

그런데도 오래전 앓던 열병처럼 그곳이 그리워지네요.

막걸리 한 되와 사이다 1병에 3천원이였나, 파전 하나에 천원이던 그 시절이 꿈만 같습니다. 뒤돌아보며 씨-익 웃으며 기억되어 있는 그 시절이 좋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지치고 힘들고 짜증도 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엄마가 있어서.....

내일은 토요일이니깐 어제 만들어 둔 돈가스로 점심에는 칼질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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