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아래 진풍경..밥 몇알, 파리 한마리, 방울토마토 한 알

 

병아리
내가 진주에서 학원 강사를 하며 자취를 하던 때이다.

 

버스로 20분이면 가는 사천 집으로 몇 달 만에, 그것도 부모님들의 성화로 토요일 버스에 올랐다. 아버지께서 즐겨 쓰시는 붓글씨 생각해서 최고급 화선지와 먹물, 조카들을 위한 동화책을 안고,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반긴 것은 조카들이다. 마당을 한 바퀴 삐-잉 둘러보는데, 저게 무얼까?

감나무 밑 하얀 종이가 깔려 있다. 그곳엔 밥 몇 알과 물통 뚜껑 즈음으로 보이는 곳에 담긴 물, 그리고 파리 한 마리와 방울토마토 한 알이 놓여 있다. 실로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곁에 있던 조카 수미에게,

‘수미야, 저게 뭐야?’

‘응, 노랑이를 위한 제사상이야’

초등학교 5학년인 그 애가 그런다.

몇 주 전 학교 앞에서 산 병아리, 노랑이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나무 밑에 묻고 죽어도 배는 고플 것이라며 그렇게 차려 놓았다고.

‘파리와 토마토는 뭐야?’

‘파리는 노랑이가 제일 좋아하던 것이고, 토마토는 디저트야’

수미에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몇 해 전 그 일이 떠올랐다.

일요일 조카들을 데리고 사천에 있는 산성공원으로 갔었다. 의례 그렇듯 우리는 공원 앞 가게에서 새우깡 두 봉지를 샀다. 하나는 셋이서 먹고 하나는 고스란히 비둘기며 물고기들의 밥이다. 그렇게 물고기에게 가기 위해 올라가는데 길 한 컨에서 비둘기가 죽어 있다. 서른 가까이 된 고모도 조카도 뭘 보려는지 머리를 홱 빼며 죽어 있는 비둘기를 보니 안돼 보인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지 흐트러짐 없는 비둘기를 안아 비둘기 집이 있는 곳으로 간다. 조카들은 무슨 의식이라도 치른다고 생각하는지 조잘조잘하던 입들이 조용하다.

‘제 부모며 형제, 친구들이 이곳에 있을 테니깐 이곳에 묻자’

땅을 파고 조카들과 낙엽을 가져와 깔고 비둘기를 누인다. 다시 낙엽을 덮고 흙을 덮는다. 주위의 돌들을 그곳에 몇 개 올리고, 물고기를 위한 새우깡을 뜯어 그곳에 쏟아 붓고 셋은 나란히 서서 하늘 보며,

‘비둘기야 좋은 곳으로 마음껏 훨훨 날아가거라’

그 후 간혹 공원으로 갈 때면 약속이나 한 듯이 셋은 돌로 덮어 놓은 그곳을 찾았었는데.....

조카가 제사상이라고 만들어 놓은 그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괜스레 숙연해 지면서 미소가 머문다.

‘수미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고모랑 산성공원에다 비둘기도 묻었잖아. 내가 노랑이를 얼마나 예뻐했는데. 학교 갔다 오면 나만 졸졸 따라 다니고, 엄마도 없이 지 혼자서 너무 불쌍하잖아’

금방이라도 다시 울음을 터트릴 듯이 글썽인다.

그러면서 그런다.

‘이제 다시는 병아리 사지 않을 거야. 아저씨들은 왜 엄마 닭은 두고 새끼들만 파는지 모르겠어’

그 모습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한다고. 일일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어른들에게서 배우고 느낀다고. 어리기에 좋은지 나쁜지, 옳은지 그릇된 것인지 분간하는 능력이야 미숙하겠지만, 조카들이 나를 가르치는 것 같다. 바르게 잘 살라고, 남을 해치지도 말고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라고, 부모님들에게 잘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라고.....

신문의 사회면 보기가 무엇보다 싫은 요즈음 같은 세상.

운다고 제 속으로 낳은 자식을 던져 죽이고, 모녀가 아버지를 죽이고, 배신한 애인을 죽이는 일로 신문지면을 도배하는 세상. 애완용 동물들을 위한 과자며 껌, 장난감까지 나오는 세상에서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의 지위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애완용 동물들의 종류도 계속 늘어 간다는데, 거기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이 기르고 있다니.....

정장 이 시대 노인들의 설자리는, 봄여름 무성함 안고 있다 가을이 되어 낙엽들 바스락바스락 뉘 발걸음에 어스러지는지 그렇게 어스러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실로 내가 나 혼자가 아닌 것 같다. 나를 바라보는 저 어린것들에게 행동 하나 하나 쉬이 할 것이 아니다. 제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공손하게 말하고, 뭘 먹을 땐 먼저 생각하고, 공공장소에서의 질서까지 하나하나 말이다.


문득 결혼한 친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다섯 살 딸애가 밖에서 집으로 들어오면 신발을 휘-잉하니 벗어 던지곤 한다고. 그래 자기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신경 써서 외출에서 돌아올 때면 신발을 반듯하게 정리하는 모습 보였더니, 한동안 별반응 없더니 어느새 딸이 그를 닮아 간다고 좋아라 하던 모습이.


그렇게 병아리의 제사상 보고 있는 내게 아버지 그러신다.

‘뭐하노 빨리 안 들어오고’

‘예, 아버지. 어디 편찮으신데 는 없습니까?’


예전에 긁적여 두었던 글들을 보다 문득 내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이제는 두 아이를 키우는 나에게 예전의 내가 나를 가르친다.

아이들에게 화내지 말고 먼저 본보기가 되어라고.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보여 주라고.

아이의 행동 하나 하나가 바로 나 자신이라고, 나를 꾸짖어야 된다고.....

또 나 스스로 얼마나 행동으로 옮길지 알 수는 없지만, 바로 여기서 출발부터 하자고 욕심 내지 말고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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