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와 지자체 서로에게 힘 되어야 남북관계도 힘 받는다

남북교류의 상징, 통일딸기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자치단체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지난 9월16일 경남 사천시 곤명면 본촌마을의 한 딸기재배시설에 평양에서 자란 딸기모종이 옮겨 심기고 있다.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극도로 악화됐던 남북관계가 민간단체의 대북 쌀 지원 재개와 이산가족상봉 추진 등으로 조금은 풀리는 모양새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경남 사천에서는 통일딸기가 한창 뿌리내리고 있다. 이르면 올해 연말에 맛보게 될 통일딸기. 그러나 이 사업을 진행하는 (사)경남통일농업협력회(줄여 경통협)나 재배를 맡은 농민 모두 얼굴을 활짝 펼 수만은 없다. 통일딸기가 남북을 잇는 진정한 평화의 상징이 되기까지 풀어야 할 과제도 많기 때문이다.

‘경남 땅에서 싹을 틔우고 평양 땅에서 줄기를 뻗쳐 다시 경남 땅에서 열매를 맺는다’ 하여 이름 붙은 통일딸기. 경통협이 경상남도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민간 남북교류협력사업의 결과물이다. 딸기가 저온성 작물임을 감안해 남녘에서 보낸 딸기모종을 북녘에서 증식시킨 뒤 돌려보냄으로써, 남측은 여름철 고온으로 인한 바이러스 피해를 줄이고 북측은 앞선 농업기술을 전수받는 이점이 있다.

5년째 접어든 이 통일딸기사업이 올해는 천안함사태로 사실상 불가능할 줄 알았다. 통일부에서도 “인도적 지원 사업에 농업분야를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방침을 발표하며 통일딸기사업을 사실상 중단시키려 했다.

딸기는 저온성 식물이어서, 경남보다 시원한 평양에서 증식하면 이점이 많다.
그러자 경통협이 가만있지 않았다. 천안함 침몰에 북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도 경통협은 “수 년 간 이어온 농업교류협력사업이 중단돼선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민간교류의 물꼬는 남겨 둬야 한다”며 여론에 호소함으로써, 결국 통일부의 승인을 얻어 냈다.

그리하여 당초 계획보다 두 달 가까이 늦어진 지난 5월1일, 딸기모주 1만5000포기가 다른 농업자재와 함께 인천항을 떠나 남포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난 9월4일, 이 딸기모종은 몸집을 10배나 불린 15만포기로 변해 돌아왔다. 통일딸기가 “‘남북교류의 상징’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듣는 이유다.

그럼에도 통일딸기 재배 농민과 경통협 관계자들의 표정은 어둡다. 무엇보다 ‘통일딸기’라는 수식어가 붙긴 했지만 안정적인 생산과 유통 체계를 갖추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통일딸기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모종을 심는 것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계획성이 있어야 하지만 남북관계의 특성상 이것이 녹록치 않은 게 현실이다.

또 북에서 내려온 딸기모종을 직접 재배하는 농민들로선 최소한 일반 딸기를 생산했을 때와 엇비슷한 소득을 올릴 수 있어야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처럼, 남북관계에 영향을 받아 딸기모종이 늦게 도착할 경우 생산량이 줄고 수확시기가 늦어져 별 이윤이 남지 않게 된다.

사천시 곤명면 본촌마을 문달호 씨 농장에 통일딸기모종 심기가 한창이다.(9월16일) 이 모종이 평양천동국영농장에서 내려왔음을 알리는 글귀가 포장지에 선명하다.
반면 모종이 제때 내려와 딸기재배시설에 들어갔더라도 이상 증상이 생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실제로 지난해 일부 농가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모종이 시들어 애를 태워야 했다. 만에 하나 통일딸기모종이 큰 탈이라도 날 때는 한 해 딸기농사를 그대로 망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이처럼 통일딸기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남북교류와 평화의 싹을 키운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한편으론 여러 가지 불안감도 함께 지고 가는 셈이다. 따라서 통일딸기사업을 주관하는 경통협이나 이를 후원하는 경상남도는 이런 불안감을 줄이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통일딸기의 판로를 개척하는 일이다.

도민들의 단순 체험수준을 넘어 처음으로 전문 생산개념이 도입된 지난해의 경우, 사천시 곤양면 본촌마을에서 생산된 통일딸기는 농협을 통해 서울로 진출할 수 있었다. 가격도 비교적 좋아 최상품 가격을 유지했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생산시기가 늦어짐에 따른 출하량 감소였다. 또 농협을 통한 판로 역시 뒤늦게 열렸다.

올해 1월14일, 김수영 전 사천시장이 첫 수확한 통일딸기를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에게 전달하는 모습.
이 과정에 자치단체인 경남도와 사천시의 역할은 매우 궁색했다. 경남도로선 남북교류협력사업 지원금 10억원을 내놨지만 이 중 딸기사업분야에 돌아간 것은 아주 일부였다. 그리고 사업비 지원 외에 행정력을 적극 발휘했다고 할 만 한 점은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

사천시는 통일딸기가 수확될 무렵에야 즉흥 이벤트를 마련했다. 사천시장 등 몇몇 지역 기관장들과 함께 북에 고향을 둔 이북5도민을 초청해 ‘첫 딸기 수확’ 체험을 갖도록 한 게 전부다. 일반 딸기 생산농가들에 지원하는 흔한 포장지도 지원하지 않았다. 이런 방관자적 자세는 적어도 지금까진 여전하다.

하지만 통일과 화해협력을 상징하는 통일딸기를 전국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지자체로서, 뒷짐만 지고 있는 듯 보이는 자세는 적절치 않다. 그렇다고 불확실성을 안은 채 농사를 짓고 있는 통일딸기 재배농민들을 지자체가 나서서 단순히 “거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질 것을 주문한다.

이런 요구는 경통협이나 통일딸기 재배농민이 한 목소리로 하고 있지만 지자체를 향해 대 놓고 말은 못하는 모양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민과 관이 계속해서 손발을 맞춰야 하는 이 사업의 속성 상 속마음을 개운하게 다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해 심었던 통일딸기모종에서 자란 통일딸기. 생산한 통일딸기를 어떻게 유통시킬 것인가가 농민들의 고민이다.
어쨌거나 북에서 내려온 통일딸기 모종은 한반도 남쪽에서 뿌리를 내렸다. 15만포기 가운데 3만포기는 밀양에, 나머지 12만포기는 사천에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와 같이 밀양은 통일딸기 체험객을 받고, 사천은 일반 딸기처럼 농사지어 소비자를 찾아 나설 예정이다.

이 과정에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무엇보다 평화와 통일의 상징 ‘통일딸기’를 지자체의 얼굴로 내세울 수도 있겠다. 통일딸기가 경남에만 있는 것임을 감안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사실 이런 방향으로 더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할 곳은 사천시다. 사천의 딸기 생산량은 다른 지자체에 비해 많은 편이 아니다. 또 밀양 진주 하동 등 경남의 다른 지자체만큼 홍보가 썩 잘 돼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참에 사천시의 딸기 브랜드로 ‘통일’을 접목시키는 것은 상당히 유효해 보인다. 만약 통일딸기가 자리를 잡으면 다른 농산품에도 자연스럽게 확산될 수 있다.

통일딸기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단지 내 욕심만 챙기는 일”로 비판 받지는 않을 것이다. 통일딸기가 각광을 받는 것은 곧 남북교류사업이 더 활발해짐을 의미하고, 이는 남북관계도 더 평화로워진다는 얘기다.

북녘이 고향인 조정희 할머니가 올해 1월14일 사천시 곤명면 본촌마을 통일딸기 재배현장에서 감격스러워 했다.
물론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경남도가 추진하는 통일딸기사업이 왜 특정 지자체 농가에만 보급되느냐’는 문제 지적이다. 경통협에서 통일딸기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강신원 이사는 실제로 이런 지적을 많이 받고 있음을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딸기모종 12만포기라 해봐야 사천의 일곱 농가에서 조금씩 나눠 심어도 동이 났을 정도의 적은 양이었다. 이는 그만큼 이 사업이 걸음마 단계에 있음을 뜻한다. 그러니 경남 전역으로 통일딸기를 확산시킬 여력은 아직 안 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 사업이 제 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지지부진 할 경우다. 경통협으로서는 이 사업이 어느 곳에서 진행되든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찌 되었거나 통일딸기가 남쪽에서 환영 받음으로써 남북교류사업이 더 꽃피면 그만이다. 그러니 이 뜻에 부응할 농민과 지자체가 있다면 따라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사천시가 더 분발해야 하는 대목이다.

민간교류사업으로 힘겹게 맺은 통일딸기. 이제는 정부와 지자체도 활용방안을 찾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문달호 씨가 갓 심은 통일딸기모종에 물을 주고 있다.
또한 정부도 해결해 주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검역의 간소화와 육로이동이다. 이는 모종 심는 시기를 하루라도 앞당겨야 하는 농민들로선 절박한 문제다.

이번의 경우, 딸기모종이 인천항에 도착한 뒤 농민들 손에 들어가기까지 꼬박 11일이 걸렸다. 경통협에서는 식물검역원이 딸기모종 재배현장을 직접 방문해 보거나 하면, 검역에 걸리는 시간을 지금보다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여기에 해상이 아닌 육로를 이용할 수 있어도 2~3일 더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딸기. 이것이 담고 있는 속뜻을 잘 이해한다면 그 활용방법 또한 무궁무진하다. 통일딸기가 재배농민과 지자체, 나아가 남북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온 국민에게도 좋은 향기를 뿜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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