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넘은 사랑의배달부-6]인도네시아 마지막 여정을 끝내며

이드리스씨의 아내와 아들 그리고 그의 친척들에게 영상편지를 보여주고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인도네시아 마지막 방문가정인 무디 씨의 집으로 향했다. 이주노동자인 무디 씨의 집까지는 105km, 5시간 만에 도착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방문한 가정 중에 가장 오지였다. 길 양 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 농장 사이로 난 도로를 지나, 비포장도로를 1시간가량 더 가서야 무디 씨의 집이 보였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1시간 정도 달리다보니 멀미가 날 정도로 괴로웠다.

무디씨의 가족과 '사랑의배달부' 봉사단이 함께 기념 촬영한 모습
무디 씨의 집은 사탕수수와 바나나, 코코넛 등 열대 과일 나무와 이름을 알 수없는 나무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별장 같은 느낌을 줬다. 한국 같으면 인적이 드문 지리산 자락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집으로 볼 수 있다. 아무튼 지금까지 방문했던 가정과는 다르게 인도네시아의 울창한 열대 밀림을 접할 수 있어서 색다른 경험이었다.

우리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무디 씨의 친척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는데, 금방 20명 넘게 모였다. 예전에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이들도 친척들끼리 지척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도 있는 듯 했다.

무디씨의 영상편지를 보며 흐느끼는 가족들(맨 왼쪽 검은 모자를 쓴 사람이 무디씨의 아버지다)
무디 씨의 영상편지가 화면으로 나오자, 가족들은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특히 그의 누나와 여동생은 영상편지가 나오는 내내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가족들을 위해 먼 타국에서 고생하고 있을 그가 안타깝기도 하고, 오랫동안 보지 못해 가슴속에 맺힌 그리움의 응어리가 곪아 터진 것이다.

가족들의 영상편지를 촬영하는 내내 무디씨의 사촌동생들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으로 가져 갈 가족들의 영상편지를 촬영한 후, 무디씨의 가족들은 지금까지 인도네시아 일정에서 보지 못했던 갖가지 음식을 우리에게 내놓았다. 말 그대로 진수성찬이었다. 늘 같이 지냈던 가족처럼 거리낌 없이 우리는 그의 가족들과 오순도순 모여 같이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무디 씨의 가족들이 내놓은 진수성찬(닭 튀김과 물에 데친 채소, 양고기 등 푸짐하게 나왔다)
후식으로 나온 코코넛 열매다. 원래는 하얀 빛깔을 띠고 있지만, 시럽을 넣어서 빨간 빛깔을 띠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집 앞마당에서는 2부가 펼쳐졌다. 성악가 출신 이영찬 원장의 노래 한곡을 시작으로 조촐한 음악회가 벌어진 것. 인도네시아 여정에서 늘 그래왔 듯, 택시기사 최연수씨가 노래 한곡 뽑아 보라고 이 원장을 부추기자, 가족들의 박수를 받으며 이 원장의 우렁찬 바리톤 목소리가 열대 밀림 속으로 울려 퍼졌다.

이에 답하듯, 무디 씨의 가족 중에 친동생과 고등학생인 사촌동생 2명, 무디 씨의 형이 인도네시아 국가와 민요 등을 들려줬다. 언어가 틀려 서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우리와 그의 가족들은 어느샌가 하나의 가족이 된 듯 했다.

밀림으로 둘러쌓인 무디씨의 집 마당에서 조촐한 음악회가 열렸다.
조촐한 음악회가 끝난 뒤, 무디씨의 가족들이 인근에 바다가 있다며 잠시 구경하고 가라고 우리를 안내했다. 나와 하언이 그리고 우준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했다. 20분 정도 가자 열대 야자수 너머로 넓은 백사장과 인도양이 눈에 들어왔다.

무디씨의 사촌여동생과 삼촌이 오토바이로 해변까지 데려다 줬다.
이색적인 인도네시아 해변을 잠시 걷는 사이, 저 앞으로 보이는 외딴 작은 섬에 홀로 서 있는 고대 힌두사원의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거센 파도에 못 견뎌 무너진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도착한 힌두사원에서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인도양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이정기 센터장이 힌두사원 앞에서 무디 씨의 아내, 아들과 함께 기념 촬영한 모습
성악가 출신인 이영찬 원장도 그의 아들 우준이와 함께 기념 촬영했다.
이곳은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모 방송국에서 방영했던 해외 관광지 소개 프로그램에서 잠시 본 곳이었다. 그때 방송을 보면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우연찮은 방문이 잠시에 불과했지만, 힘들고 고달픈 ‘사랑의배달부’에 동참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변에서 바라본 인도양 모습. 한국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거센 파도가 인상적이었다.
멋진 해변과 인도양을 뒤로하고, 우리는 그의 가족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눴다. 인도네시아 마지막 방문가정이라서 그랬을까! 나뿐만 아니라 다들 진한 아쉬움의 감정을 쏟아냈다.

다음 일정은 인도네시아에서 활화산으로 유명한 브로모화산. 폭이 110km에 이르는 광대한 분화구가 있는 브로모화산은 해외의 많은 관광객들이 몰릴 정도로 유명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고된 여정에 지친 우리는 어쩔수 없이 그곳 일정을 취소했다. 브로모화산에서는 등산을 해야 하는데, 체력이 바닥이 난 상태에서 등산은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또 캄보디아 일정을 위해서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다. 우리 차량은 곧바로 발리로 향했다.

발리까지도 쉽지 않는 거리다. 무디 씨의 집에서 오후 6시에 출발한 우리는 중간에 발리행 페리호를 타고 9시간 만에 도착했다. 또 발리에 있는 숙소까지는 한참을 달려야 했다. 사실 상 인도네시아 일정 중에 하룻밤만 뺀 나머지 3일 밤은 달리는 차량이 우리의 침실이었다.

발리에서 유명 관광지를 돌며 그동안 쌓인 피로를 푼 우리는 이틀간의 휴식을 끝내고 다음 일정인 캄보디아로 향했다.

▲ 발리에서 가장 유명한 힌두사원 중에 하나인 따나롯 사원(평소에는 가는 길이 물에 잠겨 있어 갈수 없지만, 바닷물이 빠지면 건너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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