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까마귀 떼.. 오늘을 까마귀설이라 불러주랴!

2월의 첫날, 경남 사천시 사남면 화전리 들판을 지나는 전깃줄에 한 무리의 까마귀 떼가 따스한 햇살에 몸을 맡기고 있다. 마치 한여름 제비 떼를 보는 듯하다.
까마귀. 부리와 몸통, 다리까지 온통 새까맣다. 얌전히 앉아 있는 모습만 보면 덩치가 그리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날개를 펼치면 제법 해를 가릴 정도다.

어릴 땐 왠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동네에 상여라도 나갈라치면 어찌 알았는지 멀리서 ‘가~~악’ ‘가~~악’ 하고 울어대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섬뜩하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오히려 친근감이 든다. 반대로 길조로 여기는 까치는 그냥 밉다. 너무 영악해 보이기 때문일 게다. 똑똑하기로 치면 까마귀도 못지않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까마귀는 측은지심을 일으킨다.

빈 논에서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는 까마귀 떼
왤까?

한때 ‘몸에 좋다’는 소문이 돌아, 거의 씨가 마르는 사태까지 이르렀던 게 이유인가 보다.

어릴 적 겨울 아침, 학교 가는 길에 멀리 들판을 보노라면 파릇파릇 보리 싹이 연한 초록빛 선을 긋고 있어야 하는데, 초록이 아닌 까만 선일 때가 종종 있었다. 이럴 때는 ‘열이면 열’ 까마귀였다. 여름철엔 뵈지 않던 까마귀들이 겨울이면 수백 수천이 무리를 지어 보리논에 내려앉았던 것이다.

가끔 논 주인이 까마귀를 쫓을라치면 수백인지 수천인지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까마귀들이 동시에 날아올랐다. 파랗던 하늘은 이내 검게 변했고, 그 무리가 나를 향해 다가올 때는 그 규모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난다.

어릴 적 겨울논에서 까마귀 떼가 날아오르면 하늘이 온통 까맸다.
그렇게 많던 까마귀는 1980년대 후반부터인가 차츰 줄기 시작했다. 까마귀가 몸에 좋다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을 넘어 공중파를 타기 시작하면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90년대 들어선 겨울 들판에서 까마귀 무리 보기가 힘들었다. 까마귀 떼가 연출하는 장관! 겨울이 오면 은근히 기대하는 것 중 하나가 사라진 셈이었다.

겨울 들판에서 종적을 감췄던 까마귀는, 2000년대 들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수십 마리씩 보이던 게 어느 새 수백 마리를 넘어 거의 1000에 근접한 듯하다. 다른 이에겐 몰라도 내겐 무척 반가운 일이다. 그리고 돌아와 준 까마귀가 고맙다.

전깃줄에 길게 늘어선 까마귀 떼
농부들에겐 들판에 갈아 둔 보리와 밀을 헤집는 까마귀가 미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까마귀 떼 때문에 보리농사를 망쳤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유난히 추운 이번 겨울, 까마귀들도 잘 이겨내길 빌어본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까치설이다. 그럼 오늘쯤은 까마귀설로 불러 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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