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 속에서 더 돋보이는 일본 국민성.. 우리는?

"백제는 일본에 불교와 한자를 전했다. 그러나 그런 고마움도 모르고 미개한 일본은 우리의 역사에 많은 해를 끼쳤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일이다. 임진왜란 때 우리의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해 갔으며 일제치하까지도 그런 횡포는 계속 되었다.

1592년 도쿠가와 막부(幕府)는 일본 열도를 통일하자 넘치는 힘을 외부로 돌리고자 우리 조선을 침략했다. 임진왜란이다. 수많은 양민들이 학살되고 전 국토는 초토화 되었다.

진주성전투는 임진왜란의 3대첩(大捷) 중의 하나로 꼽힌다. 진주성 내의 민관군들은 힘을 합쳐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다. 그리하여 왜군 2만여 명을 물리쳤다.

논개, 1910년 을사늑약(勒約)과 나라 빼앗김. 안중근과 이토오 히로부미(伊藤博文)

윤봉길과 상해 홍구공원, 천장절 기념식장, 그리고 관동군 사령관 시라카와 암살, 유관순, 3.1만세운동, 731부대와 마루모토, 그리고 인간생체 실험, 명성왕후 시해(弑害), 고종황제의 독살(毒殺)설, 우리나라 해방, 6. 25전쟁과 전후 일본경제의 부흥, 조직폭력배 야쿠자집단, 그리고 일본판 포로노, 경제적 동물, 모방의 천재, 키가 작아서 왜놈(倭놈), 이때의 왜(倭)는 난쟁이 왜(倭), 심각한 무역역조.
역사 속에서 일본은 언제나 가해자고, 우리는 피해자였다."

NHK 화면 캡쳐
장황하게 늘어놓았습니다. 위의 예들은 일본에 대해 배운 나의 역사 지식입니다.

거의 일본의 만행이나 부정적인 것들이죠. 지금도 나는 일본에 대해 이중적인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부러움과 미움, 혹은 시기죠.

11일(금) 일본에 진도 9.0의 대지진이 났습니다. 지진관측이 시작된 1900년 이후 4번째로 강한 지진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밀어닥친 높이 10m에 달하는 쓰나미(우리말로 하면 津波). 일본의 대재앙 아니 인류의 대재앙입니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본 참상은 할 말을 잃게 합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멍해집니다. 인명과 재산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이 서서히 느껴졌습니다. TV를 보면 볼수록 지진과 쓰나미의 공포보다는 일본인들의 표정, 태도, 의식이 자꾸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민의식과 국민성이 경이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충격이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에 바탕한 일본인에 대한 인식에 큰 혼란이 왔습니다. 정말 일본인들이 저런 사람인가? 옛날 일본인들이 현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새롭게 인간 개조가 됐다는 말인가?

혹시 언론이 좋은 장면만 잡아서 왜곡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가시지 않습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 등 해외 유수 언론의 보도입니다.

신문 제목: 일본국민 대단해, 인류가 더 강해진다.

언론이 내 인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스스로 깨달은 점도 있습니다.

내가 TV를 통해, 참사를 겪은 일본 국민들의 모습을 보고 느끼고 깨달은 점입니다.

대재앙 앞에서도 큰 혼란은 없었습니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침착하고 차분했습니다.

크게 울부짖거나 원망하고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대참사를 겪은 사람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표정과 말투가 부드럽고 논리적이었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낮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전부 휩쓸려 갔어. 아무 것도 남지 않았어.”

가족과 재산을 몽땅 잃은 노인이었습니다. 입을 막고 슬픔을 몹시 억누르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정신이 물씬 풍겼습니다. 자신의 슬픈 감정으로 다른 사람이 더 슬퍼해서는 안 되겠다는 정신 말입니다.

슈퍼 앞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는 사람들, 급식소에서 음식을 배급 받고, 식사하는 모습들, 가족을 잃었거나 혹은 무시무시한 재난 끝에 구조를 받은 사람들,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피폭이 두려워 외지로 탈출하려는 차량 행렬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기 위해 기다리는 차량들.

이상의 모습들에서 질서를 어기는 사람은 볼 수 없었습니다. 사재기 하는 모습도, 먼저 먹겠다고 나서는 모습도, 허겁지겁 먹는 모습도, 새치기를 하거나 서두르는 모습도, 차량 행렬에 끼어들거나 중앙선을 침범하는 모습도 볼 수 없었습니다. 필요한 물건이 슈퍼에 조금 있었지만 뒷사람을 위해서 욕심껏 사지도 않는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이것이 일본의 저력(우수성이라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자존심이 상해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아가 우리 인간의 우수성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런 저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나름대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첫째 교육의 힘입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첫 수업에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를 반복해서 가르친다고 합니다.성장과정의 가정교육에서도 철저히 남을 위한 배려를 가르칩니다. 식당에서 종업원을 조르거나, 아이들이 떠들고 뛰어 다니는 일을 좀체 볼 수 없답니다. 길거리에 무단으로 주차하거나, 물건 등을 내놓는 일도 없다더군요. 그리고 자기 집의 정원을 잘 가꾸어 지나가는 행인들을 즐겁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답니다.

신문에서 본 내용입니다.

‘대지진이 난 그 날(11일) 저녁 아키타 현 아키타시의 그랑티아 아키타 호텔, 정전으로 암흑으로 변한 호텔 로비에선 기이한 장면이 연출됐다.

호텔 측이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숙박객을 받을 수 없다.”고 하자, 몰려 있던 숙박 예약객 50여 명은 조용히 줄을 서기 시작했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노약자들이 앞에 세워졌다. 순서를 다투는 모습은 일절 없었다. 잠시 후 호텔 측이 “정전으로 저녁을 제공할 수 없다‘며 긴급용으로 우동 10그릇을 가져왔을 때다. 우동그릇을 향해 달려들기는커녕 너나 할 것 없이 다른 고객의 허기를 걱정하며 뒤로 우동 그릇을 돌리는 ’양보의 릴레이‘가 이어졌다. 일본 전역에서 주인 없는 상점에서 약탈 행위가 있었다는 뉴스는 단 한 건도 없다.’

일본은 범죄율이 가장 낮은 국가랍니다.

둘째 일본인 특유의 종교사상과 의식입니다.

그들의 종교의식은 신사(神社)문화에 잘 들어납니다. 신사문화가 곧잘 우리나라 정서에 크게 배치되어 우리와 갈등을 겪고 반목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죠. 즉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2차 세계대전을 주도한 1급 전범(戰犯)들을 신사에 모셔놓고 일본의 총리대신이 가끔 참배하여 우리의 속을 확 뒤집어 놓습니다. 과거사를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사(神社)는 일본인들의 독특한 종교의식의 하나로 그들은 죽은 영혼도 항상 그곳에 있으며 늘 산 사람과 같이 있다고 믿는답니다.

즉 그들은 죽음도 삶의 연장이며 그래서 집안에 늘 사자(死者)의 혼을 정성껏 모신답니다. 우리의 유교문화와는 좀 다른 게, 그들은 제삿날이 없고 특별히 제사도 지내지 않는답니다. 늘 함께 한다고 믿고 밥도 같이 먹고 같이 생활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죽은 날을 기념하는 제사는 그래서 안 지낸답니다. 그리고 그들은 현실 순응적입니다. 오랜 자연재해(태풍, 지진, 화산폭발 등)의 결과입니다. 그런 재해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으니까 자연현상을 그냥 받아들이는 쪽으로 의식이 발달했답니다. 그래서 장차 닥칠 재난은 철저히 대비하되(세계 최고 수준의 대비능력과 자세), 이미 일어난 자연 재해에 대해서는 그냥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랍니다.

셋째, 세계 최고의 독서율입니다. 일본 지하철이나 전철에서는 대부분이 책을 읽는 모습을 많이 본답니다. 그리고 시를 즐기는 국민정서입니다. 일본 문학형태 중 단가(短歌)형식의 시를 전 국민이 짓고 즐긴답니다. 과장해서 말하면 일본 전 국민이 시인입니다.

일본인들이 새해 들어 벌이는 중요한 행사 중에 ‘가회시의 의(儀)’ 라는 의식이 있습니다. 이 의식은 궁중에서 행해지는데 새해 첫날 일본의 왕과 왕비는 단가의 고수(高手)를 궁으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왕과 왕비가 지은 단가 시를 전 국민 앞에 발표합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에는 사회 저명인사들을 모아 단가 시 짓기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의 주제 하에 그들이 지은 단가를 시청자 앞에서 발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세계 최고의 독서 능력과 시를 즐기는 일이 일본인 정서의 바탕을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내가 일본인 찬양가가 되었나 스스로 혼란스럽습니다. 그리고 무안합니다.

일본인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들이 겪은 재앙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반추해 보았습니다.

무질서하고, 감정대로 쉽게 행동하고, 남을 잘 배려하지 않는 우리 사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본의 대재앙을 보고, 이웃으로서 그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정성껏 도와야 할 시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글이 혹 무지하고 한편으로 독선으로 흐른 게 아닌가 염려가 됩니다.

양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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