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어진 인식을 바로잡는 소통의 힘 기대한다

한 공무원이 쓴 민원 업무의 고달픔을 담은 시가 눈길을 끈다.(사진은 기사와 무관)
90년대 중후반 초고속 경제성장이 주춤하던 시기, 60~70년대 베이비붐 시대 끝자락 세대들이 공부를 마치고 사회로 쏟아지면서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구제금융사태를 맞으며 경제는 더욱 위축되었고, “일자리 구하기가 바늘구멍에 소 들어가기보다 힘들다”는 자조가 젊은이들 사이에 파다했다.

일자리난이 심각해지자 ‘작은정부’를 내세우던 당시의 정부는 공무원의 신규채용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고, 자연스레 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시험에 매달렸다. 다른 직장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인식으로 석박사들까지 몰리면서 공무원 채용시험 통과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세계적 금융위기상황을 맞고 있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 탓에 요즘 누군가 공무원이 되었다고 하면 적어도 ‘공부로는 고생 꽤나 했겠구나’하는 생각을 갖는다. 또 모르긴 해도 당사자는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부러움을 샀을까.

그런데 최근 사천시청의 한 공무원이 노조게시판에 올린 글이 마음에 쓰인다. ‘민원가’라는 이름으로 올린 ‘몸도 마음도 지쳐 부르는 민원가’라는 제목의 글에는 민원업무를 보면서 겪는 시름이 엿보인다.

글쓰기나 표현에 있어 다소 껄끄러운 데가 있지만 글쓴이의 심정을 살리는 뜻에서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옮긴다.

사천시공무원노조 홈페이지에 '민원가' 이름으로 올려진 시

몸도 마음도 지쳐 부르는 민원가

아침부터 몰려드네 인감떼라 소리치네
신분증이 없다하네 본인왔다 괜찮다네
아가씨라 무시하네 소리치면 다된다네
동장만나 보겠다네 보든말든 니맘이지
c팔하고 사라지네 제발다신 오지마라

남에등본 떼달라네 어이상실 코웃음이
상식으로 생각해라 그게말이 되는지를

점심시간 따로없네 밥떴는데 몰려오네
서류뗄꺼 많다하네 라면퉁퉁 불고있네
곱배기가 되버렸네 먹어본들 무슨소용
살안찌는 이유있지

여섯시가 되었다네 퇴근준비 다됐는데
이제서야 들어오네 지금와서 어쩌자고?
신규증을 만든다네 학교늦게 마쳤다네
그건너네 사정이고 퇴근까지 왜막냐고

미친듯이 공부했네 합격하고 울었다네
공무원이 최고라네 나도정말 좋았다네
처음에는 친절했네 그럴수록 욕을하네
나도이제 지쳤단다 너네들이 직접해라

너거들이 본인이면 너네들이 직접해라
공무원도 인간이다 잘못한거 없는데도
욕하는건 무슨심뽀? 니네들이 잘해봐라
우린먼저 화안낸다

기초생활 신청한대 기초서류 설명하네
듣도않고 지말하네 자식들은 없다하네
호적떼니 자식줄줄 지자식이 아니라네
호적들고 보여주니 자식새기욕만하네
설명해도 다시묻네 동회장만 찾아샀네

사천시청 민원실(기사내용과는 무관). 공무원과 민원인 사이에는 종종 실랑이가 인다.
이 글에는 민원업무에 지쳐 있는 한 여성공무원의 고달픔이 담겨 있다. 짐작컨대 임용된 지 얼마 안 지난 나이30 전후의 여성이 아닐까.

공무원들의 일 가운데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는 얘기를 오래 전부터 듣고 있다. 허가관련 부서가 대표적이지만 인감이니 등본이니 하는 것을 다루는 곳도 민원인과 가까이 하는 곳. 그래서 어떤 공무원들은 그 부서만큼은 꼭 피하고 싶단다.

당연히 글쓴이의 넋두리가 헤아려진다. 공직사회 바깥에서 바라봐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면 공직에 있는 동료들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누군가는 “100% 동감”이라 했고, 다른 이는 “글을 잘 썼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동감과 칭찬만으로 넘기기에는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이 글에는 우리 삶에 있는 여러 군상들, 그 중에서도 조금은 피하고픈 유형의 사람들이 몇몇 등장한다. 여성을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사람, 문제가 생기면 일단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사람, 담당자보다는 높은 직위 사람을 찾는 사람 등등.

어찌 보면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힘없는 자의 삶의 방식이라 말할 수도 있겠고 반대로 인간의 폭력성 또는 권력지향성의 발로라고 볼 수도 있겠다. 둘 다 삐뚤어진 ‘인식’에서 출발했다.

글 속에 등장하는 민원인들은 물론 얄밉다. 그러나 그들조차 ‘우리’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소통’에 낯설고, 그 책임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나눠지고 있는 것 아닌가.

민원인과 줄다리기하며 지치는 한 공무원의 푸념 섞인 시를 보며 ‘소통’을 떠올렸다. 민원인과 공무원의 관계, 어쩌면 ‘삐뚤어진 인식’을 ‘서로의 소통’을 통해 바로잡아 나가야 하는 우리 사회가 지닌 과제의 축약은 아닐는지.

그리고 글쓴이의 영혼도 상당히 지쳤음이 글에서 엿보인다. 악순환의 연속인 셈이다. 만약 동사무소의 민원실로 우리 사회를 축약한다면, 소통부재에서 오는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쉽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공직사회에 먼저 변화를 구하고 싶다. 근무순환은 잘 이뤄지는지, 인력 배치는 적정한지, 민원처리 시스템에 개선점은 없는지, 담당자의 자긍심은 높여주는지 등등 챙길 일이 있지는 않을까.

배려하고 소통하는 공직사회의 힘으로 지역사회까지 변화시키는 멋진 사천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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