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을 꿈꾸며>내 가치관과 어긋났던 삶, 쉬이 뿌리치지 못했던 지난 날

 

▲ 생명의 땅 주인 달구들

 올 2월부터 사천시 곤명면 삼정에서 달구들 지기로 살아가고 있는 오영환입니다. 저처럼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고민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길 바라며 부족하지만 이 글을 올립니다. 또한 저의 새로운 삶을 스스로 기록하며, 처음처럼 살고자하는 마음을 끝 날까지 간직하고자 이 글을 시작합니다.


 사천시 용현면 선진의 소농 집안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안정적인 직업과 생활을 누리고자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여러 직장을 거쳐 최근 5년간은 전기공사업체를 직접 운영하였지만 항상 마음이 불편하고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스무 살 입지 때에 세웠든 가치관과 대립되는 삶이 매일 매일 나의 마음과 정신세계를 좀먹고 황폐화 시키고 있었다. 그로 인하여 사업기간 스트레스로 몇 번의 원형탈모를 겪는 아픔을 맛보기도 하면서, 나의 삶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가치관과 삶이 중요하다 할지라도 소농으로 한평생 자식의 행복만을 기원하며 뼈 어스러지는 노력을 아끼지 않으시고 살아오신 부모님 생각, 집사람과 아이들 생각, 또 현실에 대한 도피를 하려는 것은 아닌가? 등의 여러 가지 생각들, 나름 내 육신에 자리를 잡은 나태함과 타성에 젖은 생활을 해온 나 자신에 대하여 믿음이 부족하기에 사업을 정리하고 귀농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 09년 가을 부모님

 09년 7월, 뇌출혈로 쓰러져 전신 마비가 되신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이듬해 1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었지만 귀농이 '부모님께 불효'(?)라는 자책감으로 부터는 다소 벗어날 수 있었다.
 

▲ 10년 5월 온 식구가 5,6번째 지리산만인보에 참석하여

 집사람에게는 장기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느냐고 설득했다. 처음엔 10년 정도면 아이들 교육이 끝나니 그때까지라도 직장생활 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40대 중반의 나이에 어느 정도 수준의 기업에 취업하기란 쉽지 않았다. 급기야는 아프리카에 나가는 것까지 고려를 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집사람이 귀농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계속하여 직장을 알아보면서 진주산업대학(현 경남과학기술대학)에 개설된 귀농학교에 6개월간 강의를 들으며 틈틈이 농사를 짓고 계시는 지인들을 만나며 조언을 듣다보니 많은 문제들의 실마리가 잡히기 시작했고, 귀농에 대한 자신감을 조금씩 갖게 됐다.

귀농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이기 위해 머리까지 삭발하고, 여러 방면을 통하여 정보를 구하러 다니는 나의 모습에 집사람은 당분간은 나 혼자 귀농하는 조건으로 어렵사리 귀농에 동의를 해 주었다. 

 귀농에 있어 부모님에 대한 문제와 집사람과 풀어야 할 문제는 대충 정리가 되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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