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오늘을 아름답게 떠올릴 수 있는 기억 한 조각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리 길다고 느껴지진 않지만, 추슬러보니 뜻밖에 기억의 조각들이 몇 개 안 된다.

사고인지 자살인지 확실치 않다는 속보가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왔고, 순간 내 정신은 그저 멍했던 것 같다. 당시 계획돼 있던 내 일과를 계속 진행해야 하는 건지 헷갈려 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2년 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졌을 때다.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을 맞이하건만, 그래서 평소 여러 죽음에 의연한 편이었건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분이 스스로 택한 죽음 앞에는, 살짝 떨렸다.

▲ 임병준 씨가 사천읍 여고오거리 옆 공터에 세운 '나 홀로 분향소'. 자신의 차량 지붕에 영정을 올렸다.
나는 이날, 계획했던 일 한 가지는 했다. 젊은 직장인들이 주말을 맞아 보호시설에 있는 노인들을 주기적으로 목욕시킨다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일이었다. 당시 개운하게 몸을 씻은 한 영감님이 이런 말을 남겼었다.

"정작 가야 할 사람은 우린데, 너무 빨리 가삔네."

이날 오후에는 체육행사 등 몇 가지 다른 일이 있었는데, 생략했던 것 같다. 그러고는 지인들과 조금 이른 술자리에 앉았다. 어느 술자리보다 무거웠고, 대화도 적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김해 봉하마을에서 전화로 분위기를 알리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술만 마시고 있기는 좀 그렇다. 전직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 분향소라도 하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 맘 같은 사람이 분명 또 있을 거다."

▲ 임병준 씨가 사천읍 여고오거리 옆 공터에 세운 '나 홀로 분향소'. 자신의 차량 지붕에 영정을 올렸다.
이 말을 한 이는 임병준씨로, 그이는 분향하고 술 한 잔 따르고픈 이가 꼭 있을 거라며 먼저 일어섰다. 그리고 한 시간쯤 뒤에, 사천읍내에서는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곳이라 할 수 있는 여고오거리에 다시 나타났다.

낡은 자신의 승용차를 빈터에 세우고, 이를 배경으로 해 노 대통령의 영정사진과 태극기를 갖다 놓았다. 그 아래에는 향로와 촛대를 차렸다. 흰 국화 한 송이까지···. 노 대통령을 위한 '나 홀로 분향소'가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세상사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처음 마음먹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하고 나면 결말을 보는 법이다. 이 분향소도 그랬다. 출발은 한 사람으로 했으나 곧 여러 사람이 붙었다.

먼저 힘을 보탠 쪽은 조금 전까지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사람들이다. 제상이 없음에 안타까워한 이는 상을 준비했고, 상이 준비되니 누군가 제물을 차렸다. 곧 조문객들에게 술 한 잔 권할 수 있을 정도의 자리까지 마련됐다.

▲ 임병준 씨가 사천읍 여고오거리 옆 공터에 세운 '나 홀로 분향소'. 자신의 차량 지붕에 영정을 올렸다.
그다음부터는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어디선가 흰 국화다발이 도착했고, 막걸리도 쌓였다. 분향소를 지키는 시민들이 점점 늘었다.

이 분향소는 자정을 넘기자 치워졌다. 그리고 일요일인 이튿날 저녁에 이어 서거 사흘째 되던 날 저녁에도 같은 장소에 '나 홀로 분향소'가 차려졌다.

그런데 이때쯤 큰 변화가 생겼다. "보고만 있을 게 아니라 정식 시민분향소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시민들 사이에 높아졌고, 이에 따른 사천지역추모위원회가 구성됐다. 형식을 더 갖춘 시민분향소가 그럴 듯하게 차려지면서, '나 홀로 분향소'는 그 역할을 다했다.

이 시민분향소는 노 대통령의 장례식이 끝나는 날까지 줄곧 불을 밝혔다. 그리고 그 과정에 많은 시민들을 연결시켜 주었다.

▲ 임병준 씨가 사천읍 여고오거리 옆 공터에 세운 '나 홀로 분향소'. 자신의 차량 지붕에 영정을 올렸다.
어떤 이는 상주가 되어 조문객을 받고, 어떤 이는 이들에게 음식을 차려 냈다. 어떤 이는 이런 자원봉사자들에게 점심을 제공했고, 어떤 이는 현금을, 어떤 이는 물품을 지원했다. 종교인은 종교인대로, 문화예술인은 또 그들대로 참여 속에 힘을 보탰다. 고인이 그렇게 강조했던 '참여'와 '소통'이 그제야 빛났음이다.

한 사람의 결심과 실천이 만들어 냈던 '나 홀로 분향소'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일깨워 줬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굳이 아름답게 떠올리는 기억의 한 조각이다.

▲ 임병준 씨가 사천읍 여고오거리 옆 공터에 세운 '나 홀로 분향소'. 자신의 차량 지붕에 영정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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