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을 꿈꾸며> 어디에서 닭 농사를 지어야 하나? (2)

▲ 성원선배의 땀과 사랑과 열정, 그리고 못 다한 꿈이 서려있는 생명의 땅 전경

<건강한 삶을 꿈꾸며> 이 글은 최근 귀농한 오영환 님이 그의 고민과 경험을 더 많은 분들과 나누기 위해 올리는 것입니다. 귀농을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편집자-


사천시 곤명면 은사에 적당한 땅을 소개 받고 찾아갔다. 남향으로 자리 잡은 동네 앞 북향의 논이었는데 동남쪽으로는 나지막한 산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햇볕이 적당히 들어오는 1,000여 평의 땅이다. 가격도 적당하고 마을 주민 한 분을 만나보았는데 민원의 소지도 없어보였다.

하지만 한 겨울인데도 논에 물이 샘솟고 있어 토목공사가 수반돼야 하는 것이 단점이다. 다음날 토목공사를 하는 친구와 함께 가서 견적을 의뢰하니 땅값의 25%정도 공사비가 나온단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의 고향동네(곤명면 삼정)가 옆인지라 친구의 권유로 주변을 한 번 돌아보기로 했다.

이곳저곳 돌아보는데 친구가 지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성원선배 이야기를 꺼낸다. 그 친구에게는 친 형이다.

▲ 5년 만에 찾아간 성원선배의 묘소.

성원선배가 돌아가신지 벌써 1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항상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자주 잊은 이름이다.

학창시절에 같이 농업 농민문제를 고민하며 나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던 기억.
다른 길을 선택한 나와는 달리 선배는 고민에 그치지 않고 실제적인 삶을 살기 위해 사범대 출신이면서도 선생님의 길을 포기하고 농민의 길을 선택하여 그 길을 굳건히 걸어가시던 기억.
사천에 청년회를 만들려고 여럿이 술도 많이 마시고, 열띤 토론을 했던 기억.
선배에게 갑자기 찾아 온 병으로 주변의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며 눈물짓던 기억.
투병중일 때 몇 번 찾아뵙기도 했었고, 같이 청년회를 준비하던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적은 금액이었지만 대출을 받아 선배의 치료비에 보태기도 했던 기억.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끝내 우리 곁을 떠나신 날, 참 많이도 슬퍼했던 기억.

돌아가신 후 몇 년간은 명절에 몇몇 사람들과 선배의 묘소에 성묘도 가고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찾아가 뵙질 못했다. 사는 것이 뭐 그렇게 바쁘다고...

▲ 선배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묘비 글.

많은 기억들이 짧은 시간에 영상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옛 기억에 사로잡혀 있을 때 친구가 말을 이어갔다.

“형님이 요양하던 집과 축사를 팔려고 내 놓았다고 들었는데..”

선배가 돌아가신 후 여러 이유로 땅을 팔았고, 몇 사람에게 돌고 돌아 지금은 집안 조카 되는 사람이 소유하고 있고, 팔려고 한다는 것이다.

정신이 확 들었다. 그 땅은 성원선배의 꿈과 사랑, 열정이 배어 있는 곳이다. 여러 모로 부족하게 시작하는 농부의 삶 속에서 짜증나는 일, 힘든 일, 때로는 싫증과 한숨만 나오는 일들이 농부의 길을 걷는 나를 유혹하며 그 길을 포기시키려고 할 것 이다. 하지만 그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 그때마다 선배를 생각하며 내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는 큰 위안과 버팀목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역이 사천이며, 300여 평의 부지에 몇 년간 방치하여 폐허처럼 보이지만 수리하면 충분히 사용이 가능한 축사와 관리사로 사용할 수 있는 집이 있고, 지하수를 뽑아 쓸 수 있는 관정. 그리고 전기까지 시설되어있어 그 땅이면 웃돈을 더 주고라도 꼭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을 마음 깊은 곳에 심었다.

한껏 부푼 마음으로 땅 주인과 통화를 해보니, 팔려고 했는데 금융기관과 복잡한 문제가 있어 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6개월의 고생 끝에 마음에 꼭 드는 땅을 만났는데 살 수가 없단다. 낙심이 컸다. 그래도 아침 일찍 그 땅에 가서 하느님께 청하기도 했고, 그 땅을 구입할 방법이 없는지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제 나에겐 다른 땅을 보러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설 이전에 땅을 구입하는 것도 포기했다.

▲ 비노바 바베의 회고록.

실의에 빠져있는 나에게 찾아 온 또 다른 한 사람 ‘비노바 바베’는 내가 다니는 성당의 박 글라라 수녀님이 건네주신 ‘비노바 바베’의 회고록을 통해서다.

이 책의 시작에서 그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비노바 바베는 1895년에 태어나 열 살의 어린나이에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인류를 위하여 헌신하기로 서약했다. 영적인 진리와 실천적인 행동을 구체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삶의 길을 찾던 중 간디를 만났고, 인도를 갱생시키기 위한 간디의 활동에 합류하였다. 1940년 간디는 비폭력저항운동을 이끌 최고의 지도자로 비노바를 선정하였다. 인도가 독립을 얻자 비노바는 전대미문의 토지헌납운동을 시작하였다. 2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인도 전역을 걸어 다니면서 지주를 만났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땅을 내 주도록 설득하여 스코틀랜드만한 거대한 토지를 헌납 받아 그들에게 나누어 준 현대 인도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 사회개혁가로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다.’

책을 거의 다 읽어갔을 무렵 문득 스쳐지나가는 영감.

‘욕심을 버리자,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건강한 삶은 몸과 마음 그리고 나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옷을 벗어버리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가야 되는 것이 아닌가? 꼭 땅을 내 소유로 해야 준비한 일을 시작 할 수 있나? 좋은 입지조건의 땅이면 빌려 일을 시작하는 것이 지금 더 중요하지 않는가? 꼭 구입하려는 것은 욕심이다, 욕심!’

조용했던 심장이 크게 뛰고 가슴이 벅차온다. 그리고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설을 6일 앞둔 다음날. 땅 주인에게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저~ 땅을 팔 수 없는 상황이면 제게 좀 빌려줄 수는 없습니까?”

의외로 빠른 대답이 왔다.

“그렇게 하십시오. 묵혀둔 곳이고, 앞으로도 다르게 사용할 계획이 없으니, 필요에 맞게 고쳐 얼마든지 쓰십시오,”

전화기에 대고 몇 번을 절을 하며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내가 행복해지니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고맙고,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감사하게 느껴졌다.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사천시 곤명면 삼정에 나의 건강한 삶의 터전인 ‘생명의 땅’을 마련했다.

'그나저나 어디부터 손을 대야하지? 대략난감!'

*이 글은 다음카페 '생명의 땅' http://cafe.daum.net/todauddmlEkd 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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