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산길 걷다가 묵은 선문에 답하다

비가 한 두 방울 내리는가 싶더니 습기만 잔뜩 머금은 채 날씨가 찌푸리다. 출근은 했으나 한 이틀 연속 주님(?)을 모셨더니 속도 찌푸둥하고 전날 설친 잠으로 머리도 개운치 못하다. 사무실이 와룡산 기슭 끝자락이라 잠깐 산책이나 하자고 나선다.

'가까운 암자까지만' 하고 나섰지만 숲의 향기에 빠져 계획을 바꿨다.논, 밭, 공장 너머로 안점산이 보인다.
논과 밭 사이로 몇 개의 소규모 공장이 있는 길을 따라 가까운 암자까지만 하고 나섰던 길이 그냥 산길로 들어섰다. 하늘은 어둡고 바람도 없었지만 흙과 나무와 풀 새들이 어우러진 숲이 내는 특유의 향긋하고 상쾌한 냄새가 계속 숲 안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땀은 나고 조그만 파리들이 눈앞에서 귓가에서 앵앵거리지만 후각이 시·청각을 다독거리는 것 같다.

약간 경사 길로 접어들자, 미끄러워 신고 갔던 슬리퍼와 양말을 길옆 돌 위에 벗어놓고 맨발로 오른다. 많이 아플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발이 즐거워하는 것 같다. 작고 큰 돌, 길 위로 돌출된 나무뿌리, 흙이며 잔디 풀 등을 밟을 때의 느낌이 다 다르다. 글로 표현하기는 힘들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 아무 산이나 가셔서 직접 경험해 보시기를 추천한다.

안점산 봉수대가 옅은 안개에 둘러싸였다.
40여분 만에 봉화대 터가 있는 곳까지 올라 크게 숨 한 번 쉬고 내려온다. 내리막이 급한 곳에서는 발바닥이 약간 따끔 거리지만 조금만 지나면 기분 좋은 감촉으로 여운이 남는다. 땀 냄새에 파리, 날벌레들은 여전히 눈과 귀를 괴롭히지만 숲이 내뿜는 향기는 그것들을 그냥 무시하게 만든다.

사무실 가까이 오자 모내기를 위해 써레질을 마친 논들이 보인다. 경지정리를 하지 않은 천수답이다. 논두렁은 꾸불꾸불 하지만 논바닥은 평평하다.

모내기 준비를 마친 논.
그 논들을 보니 문득 생각나는 게 있다.

“왜 물은 위에서 아래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가?”

숙제라며 답은 각자가 알아보라며, 예전에 어느 스님이 하신 말씀이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까닭은 아래가 낮고 깊기 때문이라는 후배의 말도 떠오른다. 오늘 그 숙제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모내기를 마친 논
옛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측량기구나 도구도 없이 어떻게 논들의 수평을 맞추었을까? 흐르는 물을 막으면, 이제는 물이 반대로 흐른다. 아래서 위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제 높은 곳의 흙을 낮은 곳으로 보내면 글자 그대로 물의 평행- 수평이 되는 것이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까닭은 우리에게 수평을 맞추라고, 조화롭고 균형적인 삶을 살라는 물의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스님! 숙제 검사 받으러 가도 될까요?

'예끼! 이놈! 아직 멀었다.'

긴~가 민~가 합니다.

여러분들도 숙제한번 해보시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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