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소금꽃나무> / 평범한 시민들의 용기를 희망으로 승화시킨 그 이름

▲ <소금꽃나무> / 김진숙 지음
지난 7월 30일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들과 연대하고자 제3차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구로 향했다.

진주에서 출발한 버스에는 사천의 강기갑 국회의원을 비롯해, 여러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부산역 앞 광장에서는 문화제가 열렸다. 야5당 대표 정치인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본 '희망의 증거'는 아니었다.

문화제를 마무리하고, 시내버스에 삼삼오오 올라타 85호 크레인이 보이는 조선소 근처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우리 사회의 ‘오래된 절망’과 다시 대면할 수 밖에 없었다.

머리띠를 두르고, 도로를 점거하여 영도로 향하는 다리 앞에서 시내버스를 강제로 정차시킨 그들.‘빨갱이 새끼들’을 욕하며 신분증 검사니 뭐니 하며 우리들 앞에 물리력을 행사했다. 경찰 병력은 이 무법자들을 해산시키기는 커녕 같이 도와주었을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제3차 희망버스의 '진정한 희망'은 이'무법자들'의 조연으로 피어 났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시내버스와 택시를 강제회차시키는 무법자들을 피해, 전경들이 골목골목 지키고 있는 영도구 산복도로를 우회해, 2~3시간 걸려 청곡성당 인근으로 모였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트위터 계정. 그는 크레인 위에서도 트위터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비오듯이 쏟아지는 땀과 무더위 때문에 등 뒤에 '소금꽃나무'기 피어났다, 그 소금꽃나무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감동적인 연설과 밤하늘에 떠오른 풍등이 보여주는 장관에 취해 ‘희망‘의 꽃나무가 됐다. 이런 희망이 모여 조남호 회장에 대한 국회청문회가 성사됐고, 4차 희망버스가 준비중에 있다.

<소금꽃나무>는 평범한 시민들의 작은 용기를 '희망'으로 승화시킨 주인공의 땀과 눈물의 역사를 글로 기록한 소중한 책이다.

<소금꽃나무>라는 책 앞 날개에 보면 저자 김진숙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이 나와있다.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이자 한진중공업 장기해고자, 한국경영인총연합회가 복직을 인정할 수 없었던 노동운동가, 그리고 200여 일이 되도록 조선소 크레인에 올라가있는 사람의 진면목은 책 한권이나 글 한편으로 담아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솔직히 말해 <소금꽃나무>는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하거나 뒷장의 내용이 도저히 궁금해서 책읽기를 멈출수 없는 그런 책은 아니다. 이 책에는 담담하게 자기의 인생, 그리고 민주노조운동 20년을 담담하고 잔잔하게 돌아보는 에세이와 각종 파업집회에서 했던 연설문이 주 내용을 이루고 있다.

20년도 넘게 지나서 읽기가 아니라 말하기 위해 쓰여진 연설문을 읽으면서 그 내용에 공감하기란 쉽지 않을 일이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이 책은 한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학적 증거물이다. 물론 김진숙은 직업적으로 글 쓰는 사람은 아니며 사회비평 에세이와 연설문의 모음집인 이 책 또한 탐미주의니 리얼리즘이니 하는 문학이론의 범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단지 김진숙이라는 개인이 87년 민주화와 노동자 대투쟁 즈음부터 현재까지 겪어온 한국현대사의 실체적 진실을 이 책을 읽으면 대면할 수 있게 된다. 진솔하고 소박한 문체에 부산 사투리를 거침없이 구사하는 인간 김진숙을 만나는 즐거움에 대비되는 사무치게 비정한 우리 사회의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굽히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은 하모니를 이루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보게 만든다. 우리네 인생을 책으로 기록하였을 때 과연 김진숙의 <소금꽃나무>처럼 아름다운 작품이 나올수 있을까?

4차 희망버스 행사는 8월 27일과 28일 광화문 네거리에서 열린다.
김진숙은 문학적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훈련한 사람은 아니지만 항상 무언가를 말하고,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조선소 최초의 처녀용접공이었던 그는 노조 대의원에 당선되어 회사가 주는 뇌물을 받지도, 협력하지도 않아서 해고를 당하게 된다.

김진숙은 글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니라 말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억울하다고, 이럴 수는 없는 거라고, 난 빨갱이가 아니라고.....하지만 경찰에 끌려가기 일수 였던 그가 한진 조선소에 남아있는 아저씨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인물이였고, 손으로 만든 유인물을 등사기로 밀어 한진 노동자들이 모여사는 집집마다 유인물을 끼워넣고 다녔다고 한다.

일당이 좀 세서 용접을 배웠고, 돈 벌어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는 니체나 이상, 김춘수의 책을 소중하게 꽂아두고 니체도 모르는 아저씨들을 마음속으로 비웃었다고 한다.  방송통신고등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가 없어서 들어간 근로야학에서 읽으라고 준 ‘전태일 평전’도 먼지만 앉히고 있었던 사람 김진숙.

세월이 흘러 한국경영자총연합회에서 김진숙의 복직만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그들 스스로 인정한 재벌의 호적수가 되었고,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를 막기위해 크레인에 올라간 그를 지지하고 연대하기 위해 수 만명의 사람들이 버스타고 모이는 화제의 인물이 됐다.

<소금꽃나무>를 읽으면 인간 김진숙이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 그를 그렇게 만든 이 사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머릿속으로 이해되기보다 가슴속으로 절절하게 스며들여오는 것이다.

"아침 조회 시간에 나래비를 쭉 서 있으면 아저씨들 등짝에 하나같이 허연 소금꽃이 피어 있고, 그렇게 서 있는 그들이 소금꽃나무 같곤 했습니다. 그게 참 서러웠습니다. 내 뒤에 서 있는 누군가는 내 등짝에 피어난 소금꽃을 또 그렇게 보고 있었겠지요. 소금꽃을 피워내는 나무들, 황금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들, 그러나 그 나무들은 단 한 개의 황금도 차지할 수 없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아시겠지요?“ - <소금꽃나무> 중에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영도 조선소의 노동자들을 ‘소금꽃나무’에 비유하였지만, 나는 감히 그를 ‘희망꽃나무’에 비유하고 싶다. 평범한 시민들의 가슴 속에 희망꽃을 피우는 희망꽃나무.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원고료를 지급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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