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목수정 지음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 목수정 지음 / 레디앙 펴냄
검정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여자

동양의 고전미를 간직하고 있는 얼굴과 하늘하늘한 몸을 가진 저자 목수정에게 여성스러운 드레스는 참 잘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원피스를 입은 채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자신의 가치관을 추구하기에 한국 사회는 조금 부적합한 장소일지도 모른다. 이 사회에서 여러모로 ‘고군분투’한 끝에 목수정은 저 멀리 자유·평등·박애의 정신이 “지금 이 순간” 실현 되고 있는 나라 프랑스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남은 것은 여전한 대한민국이다. 직선의 독재 속에서 감금될 수밖에 없었던 상상력 …… 내가 태어난 도시의 질서가 인간의 감수성에 대한 거대한 폭력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느꼈던 것은 책 내용 보다는 저자 목수정 그 자체였다. 나는 이때껏 대한민국에서 그녀처럼 치열하게 자유롭고 유연하며 동시에 뾰족하게 날 서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책 속 곳곳에 남겨져 있는 그녀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세계관을 접하면서 나는 황홀했고 동시에 슬펐다.

왜냐하면 그녀의 글을 읽는 일은 내가 살고 있는 사회, 그리고 또 다른 사회 사이의 간극을 자각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안에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 켜켜이 쌓여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온갖 모순의 잔재들을 응시해야 했다.

목수정이 말했듯 ‘잘난 놈들은 더 누릴 권리가 있다. 억울하면 일류 대학 가고, 정규직이 되어라.’ 라는 사회의 지배적 논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평등한 세상의 탄력을 체험하고 그 자신감이 몸에 배어있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나는 그녀가 말하는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가치들을 대한민국 사회 속에서 단 한순간도 제대로 누려본 적이 없다.

이때껏 나는 이 사회가 가하는 폭력들을 폭력이라고 인식조차 하지 못하면서 살아 온 것 같다. 이 사실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회 전반과 개개인이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의”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구체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 세상이 너무 부러웠다.

그러나 그 세상이 부럽다고 해서 나 또한 외국으로 유학을 가 외국 남성과 연애할 수는 없지는 않겠는가? 내가 서있을 곳은 역시 여기 대한민국이고, 이는 어쩔 수 없는 필연이다. 그러므로 내가 선택해야 할 태도는 냉소나 방관이 아니라 “조금 더 성실해지느냐, 조금 더 독창적이 되느냐”의 갈림길에서 후자를 선택하고 그 길 위에서 보다 이 사회와 자기 자신에게 뾰족뾰족한 날을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나에게는 누구에게나 표준적 인간이 되기를 강요하는 대한민국 사회와 ‘맞서 싸울 용기를 잃지 않을 용기’가 절실하다.

삶을 즐길 줄 모르면 좌파가 아니고, 하면서 신나지 않으면 운동이 아니다

이 책의 후반 부분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좌익 정당이라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의 NL 세력들을 비판하는 데 할애 되었다. 앞장에서 목수정이 말하는 바들을 나름대로 잘 새겨들은 나로서는 그 비판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이다.

또한 목수정은 일정한 정파의 색깔을 띤 좌파들만 비판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엄숙한’ 좌파들에게도 일침을 가한다. 대학 시절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유유히 거닐며 “민족 고대”니 “”해방 이화“들에 냉소를 띤 채 시위에 '참석‘ 했던 그녀로서는 철저하게 훈련이 되어 있는 반감일뿐더러 잘 교육 받은 문화정책가로서의 비판에도 날이 서있다.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말하는 이들이 마르크스만큼 문화를 즐길 줄 알았다면, 마르크스주의가 20세기 말에 와서 이렇게까지 푸대접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이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셰익스피어를 한없이 읽는 것이었음을 그의 딸들은 증언하고 있다.”(p.288)


그녀의 이 말은 즉 한 사회 안에서 좌파가 해야 할 역할 중 하나는 시대착오적인 엄숙주의를 버리고 좌파의 생명이라고 볼 수 있는 약동하는 자유를 스스로 마음껏 누리고 세상에 전파해야 한다는 소리 아닐까?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할 줄 몰랐던 민주노동당이 결국은 서서히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화가 되어 가는 모습에 경악하며 목수정은 당이 두 개로 갈라질 때 결국 민주노동당을 탈당한다.

나는 아직 그러한 정파니 뭐니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기 조심스럽지만 목수정의 선택에 심정적으로 마음이 기운다. 그녀로서는 굳이 “독방 두 개”를 고집하는 아저씨들을 이해하고 싶지도 이해할 필요도 없었으리라. 대한민국의 수많은 엄숙주의 좌파들은 목수정의 바람에 나부끼는 치맛자락을 예사로 여기지 말 일이다.

생명을 향하는 좌파, 죽음을 향하는 우파

목수정은 우파들이 좌파 세력 중 생태주의적 좌파를 제일 못 견뎌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했다. 좌파는 생명을, 우파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그 속성의 본질이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생명이란 무엇일까. 나는 생명의 본질이 일일신 우일신(日日新 又日新)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있는 동안 날마다 새로운 정신으로 태어나고 스스로를 새롭게 혁명하고 새롭게 사랑하는 것이 곧 생명인 것이다.

프랑스가 가지고 있는 민주 사회 또한 여러 번 죽었다 다시 깨어나는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하게 느껴지는 “동거권”을 주장하는 프랑스 젊은이들의 급진적이며 당당한 모습 또한 <원래> 그랬던 것이 아니라 68혁명이라는 사회의 발전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이다.

심지어 지금의 프랑스는 사르코지 정권을 통해 사회의 전반적인 기조에 반하여 조금씩 ‘후퇴’하는 모습조차 보여주고 있다. 역사는 이렇게 앞으로 갈 수도 있고 뒤로 갈 수도 있다. 이러한 사회의 유동성이 나로 하여금 대한민국의 변화 가능성을 믿게 만든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고 이제는 시침을 올바른 방향으로 우리 스스로 조정해야 할 때다. 그러기 전에, 우리 스스로를 먼저 스트레칭하자.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말하기 전에 자유와 평등과 박애가 무엇인지 온 몸으로 배워보자. 그 사이사이 목수정의 책을 좀 더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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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원고료를 지급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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