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6) 7코스:천지연-외돌개-법환포구

<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이 글은 '갯가' 시민기자님이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제주 올레길을 도보로 여행한 뒤 자신의 블로거에 올린 것으로, 이를 일부 고쳐 뉴스사천에 다시 올려주셨습니다. -편집자-

아침 7시 찜질방을 나서 서귀포 5일장으로 향했다. 나는 의도적으로 올레 정보를 가지고 가지 않아 청주 성님이 가자는 데로 따라 나섰는데 올레 코스인 재래시장과, 서귀포 5일장이 서로 다른 곳인데 같은 곳으로 착각하여 아침부터 1시간 가량 올레 코스의 반대 방향 언덕으로 올라 서귀포 5일장으로 들어섰다. 이리 저리 구경하다가 일단 아침으로 순대국밥을 시켜 먹으면서 확인하니 서귀포 5일장과 서귀포 재래시장은 완전히 다른 곳이란다. 그래도 어쩌나 나그네가 낯선 곳에 간 만큼 느끼고 배우는 거 아니던가. 아침식사를 마치고 되돌아 나와 올레 코스를 확인하고 천지연폭포로 향했다.

천지연폭포로 향하다 보니 올레 코스에서 소개된 원래 가고자 했던 서귀포 재래시장을(서귀포에서는 아케이드 시장이라고 불렀다.) 지나면서 이리 저리 눈요기를 했다. 이중섭미술관은 월요일이라 휴관이란다. 건물만 구경하고 천지연폭포로 들어가 캔맥주로 목을 축이고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돌아 나와 언덕을 오르니 올레 안내소가 보였다.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길을 재촉했다.

칠십리 시인공원으로 올라 자연석에 새긴 시를 읽으면서 지나다 보니 전망이 탁 트이면서 천지연폭포와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올레 자원봉사하시는 분이 웃으시면서 "입장료 아깝지요?" 하고 물었다. 그냥 올레 코스만 따라 오면 입장료 내지 않고 이곳으로 온단다. 거금 천 원 날렸다.

▲ 입장료로 거금(?) 천 원을 들여 간 천지연폭포.
▲ 입장료 공짜 올레 코스 천지연폭포.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천지연 폭포를 멀리하고 다시 길을 걸어 작은 오름에 올랐다. 정상에 있는 정자에서 비상 식량으로 점심을 때웠다. 청주 성님은 따뜻한 물만 부으면 비빔밥이 되는 군용 전투식량이 무척 신기한가 보다. 그리고 그만하면 맛도 괜찮단다. 속으론 '이제 성님과 헤어지고 나만의 길을 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미안한 마음으로 커피까지 끓여 대접하고 길을 나섰다. 성님이 먼저 "이쯤에서 이혼하자"고 제안하면 참 좋을 거 같은데 전혀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름에서 내려선 올레길은 다시 바다로 이어지고 그 유명한 외돌개에 도착했다.

▲ 외돌개 가기 전
▲ 외돌개의 모습

외돌개는 잘 알려진 관광지라 그런지 사람들이 제법 많다. 특히나 중국인 관광객도 무척 많은 것 같다. 자기네 나라를 제대로 둘러 보기나하고 남의 나라 관광 오는지 궁금하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또다시 가을 햇살 아래 바닷길을 걷고 또 걸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한낮의 더위에 지쳐 가는데 법환포구 입구에 다다르니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노천수영장이 보인다. 얼기설기 농사용 검은 그물망으로 가려 놓았지만 멀리 올레길에서 보면 알몸이 다 보인다.

 '아, 여기서 시원하게 목욕 좀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해도 즐거운데, 혹시나 외부인을 꺼려할까봐 목욕 중인 마을 분들께 조심스레 여쭈니 얼마든지 괜찮다고 하시면서 비누까지 챙겨 주신다.

'이게 웬 떡이냐'는 마음으로 둘이서 홀라당 벗어 제끼고 목욕을 하는데, 물이 너무 차가워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물속에 오래 앉아 있을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물이 차갑고 바위 틈에서는 연신 차가운 용천수가 흘러 나온다. 마을 주민들도 오래 있지 못하고 대충 땀만 씻고 나간다. 올레길 걸은 이후 최대의 호사를 누린 셈이다. 용천수는 일 년 내내 같은 수량, 같은 온도로 솟아 나와 마을주민들의 생활의 원천이 되었다고 한다.

노천탕에서 알몸으로 목욕하는 호사 누리다!

흔히 제주도를 상징하는 것 중 아낙네가 물허벅으로 용천수를 담아 집의 식수로 운반하는 모습이 있다. 마을들이 대체로 이 용천수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음이리라.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마을의 소중한 공동자산이었음이 분명하다.

우스개 소리로 목욕하시는 마을 어른께 남자들은 이렇게 목욕도 하고 호사를 누리는 데 여자용이 있는지 여쭈어 보니 바로 옆에 있단다. 그래도 홀라당 벗고 목욕하지는 않을 것 같아 나오면서 보니 그냥 빨래터로만 사용되는 것 같다.

▲ 법환포구의 용천수 야외 목욕장. 윗칸은 헹구는 곳, 아래 칸은 씻는 곳으로 구분되어있다.

또다시 굽이 굽이 바닷가 올레길을 따라 풍림 콘도로 들어 서는데 옆 개울에 안면이 있는 물고기들이 바글바글 한다. 자세히 보니 은어다. 와! 통발만 있으면 저게 다 내 건데... 하지만 어느 누구하나 낚시하거나 고기 잡는 사람이 없다.

'에라 이 못된 놈. 그저 고기만 보면 잡아 먹으려고...'

스스로 반성하면서 풍림 콘도 마당에서 잠시 올레꾼을 위해 설치한 생수대에서 시원한 물을 마셨다. 그런데 갑자기 기타 반주에 맞추어 안치환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은가. 주위를 살펴보니, 콘도 벤치에는 부인인 듯한 여자 분이 피곤에 지쳐 누워 있고, 남편으로 보이는 분이 연방 지나치는 올레꾼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온갖 감정을 실어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있었다.

"우리 갱상도 남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리 못합니다"라고 하니 청주 성님도 마찬가지란다. 참 부러운 부부라고 생각하면서 풍림 콘도를 막 지나자, 홀로 가는 여자 올레꾼을 만났다. 대충 인사만 건네고 지나쳤는데, 길을 헤매다 다시 만났다. 걷는 속도가 우리하고 비슷해 이런 저런 대화를 주고 받다가 그냥 자연스레 일행이 되었다. 올레길에서 4박5일 동안 청주 성님과 함께한 바로 서울 누님이다.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잠시 동안 함께 했는데 난 '어쭈! 여자치곤 제법 잘 걸어 일행해도 되겠네'하고 생각했다. 만약 서로 처음 만났을 때 걷는 속도가 차이 나면 친구할래야 할 수가 없을 터. 4박5일째 걷는 남자 둘과 문득 만나 4박5일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했다면, 이는 우연인가 인연인가?

▲ 아내를 위해 열심히 노래를 불러주던 낭만 부부.

아내를 위해 열심히 노래를 불러주던 낭만 부부를 다시 만나, 뒤에서 몰래 사진 한 장 찍고 추월해 나갔다. 남자는 배낭 대신 기타만 메고 다녔다. 남자분께 "다음 공연은 언제합니까?" 물으니 멀뚱멀뚱해 하신다. "아까 풍림콘도에서 부인을 위해 너무 열정적으로 노래를 불러주시는 걸 보고 감명 받았는데 다음 공연에는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웃으면서 "그럼 한 번 하지요!" 하신다. 그런데 이틀 후 올레길도 아닌 모슬포의 재래시장 한 식당에서 우연히 만날 줄 누가 알았겠나.

▲ 해는 뉘엿뉘엿 지고 나그네의 마음은 바빠지는데, 역시 바닷가 일몰은 잠시 정신을 앗아갈 정도로 아름답다.

새로운 만남 그리고 저렴함에 놀란 게스트하우스

7코스 종점인 월평포구에 도착했다. 보통 종점에는 식당과 여관이 있기 마련인데 여긴 그냥 말이 포구이지 작은 배 몇 척에 고무 보트가 있는 곳이다. 도저히 숙박이 불가능해 어쩔수 없이 지는 해을 안고 8코스 중문 쪽으로 향했다. 숲속길을 지나 언덕을 넘으니 다행히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아담한 숙소가 나타났다. 각각 1만5000원씩 하는 게스트하우스로 숙박을 결정했다. 게스트하우스란, 커다란 숙박시설 중에 남자용, 여자용으로 구분하여 최대 6-7명씩 함께 숙박하는 방식으로 저렴하게 운영하는 방식이다. 더군다나 내일 아침식사까지 포함한 비용이라니 놀랍다.

제각각 다른 곳, 다른 시간에서 출발했던 올레꾼이 일행으로 뭉쳐 이제 세 사람으로 늘어났다. 몸을 씻고 숙소에 딸린 식당에서 함께 해물탕으로 저녁식사를 나누었다. 소주도 한 잔 돌리면서 서로 소개하니, 여자분은 61년생으로 서울 수락산 아래에서 제법 큰 식당을 운영하시고, 청주 성님은 57년생으로 건축회사에서 토목 감리를 맡고 있는데 지금은 일이 없어 출근하지 않아도 월급이 꼬박꼬박 나온단다. 각각 다른 곳에서 왔지만 올레길을 함께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친밀감이 생겨, 소주를 무려 7병이나 비우고서야 저녁 만찬이 끝났다.

만찬 비용은 서울 누님에게 뒤집어 씌웠다. 종업원이 10여 명이 넘는다는데, 그래서 의료보험 때문에 골치 아프다고 나한테 상담했으니 시간외 근무 수당 지급한 셈 치고 몽땅 계산하시라니까 기분좋게 수락했다. 각자의 숙소로 돌아와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골아떨어졌다.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원고료를 지급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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