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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귀 기울이면

2022. 01. 26 by 구륜휘 작가
구륜휘 작가
구륜휘 작가

[뉴스사천=구륜휘 작가] 나는 요즘 등대길101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과 인사하고 음료를 만든다. 내가 만든 이 음료는 어떤 맛이 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될 만큼 레시피는 정착되어 있다. 누군가 말했다. 카페는 보통의 맛을 내는 게 어려운 법이라고. 최고의 커피가 아니라 보 통의 커피를 만드는 일이 어려운 법이라고 말이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한 아저씨는 나를 누나라고 부른다. “누나, 밥 먹었어요?” 묻고 “누나, 왜 이렇게 늦게 출근해요.” 핀잔을 준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빠, 나는 누나가 아니에요.” 그러자 누군가가 말했다. “서로 누나라고 부르고 오빠라고 부르면 되지.” 그래서 우리는 누나와 오빠 사이가 되었다. 그 사람에게는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호칭이 있다는 게 반가웠다. 나에게 많은 사람은 선생님, 혹은 직함으로 불리는 여러 군상들이 있을 뿐이니까. 루니가 누나가 되는 순간 누나라는 공간만큼의 애정이 생겼다.

한 꼬마 손님은 이층을 오가는 계단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있었다. 재미있겠다 싶어서 나도 해보려는데 무거운 엉덩이가 쉬이 내려가지 않았다. 계단에서 미끄럼틀을 타다가 둘이서 2층에서 쉬고 있었다. “너는 좋아하는 게 뭐야?”하고 물었다. 꼬마는 빙그르르 돌고 다시 벽에 붙어서 고민했다. 좋아하는 게 특별히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인생의 레시피처럼 우리는 배워왔다. 아이에게 더 중요한 건 좋아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힘인 듯 보였다. 나보다 세상이 낯설 법한데, 더 적응을 잘 하는 아이를 질투했다. 나는 어느새 비교하고 있었지만 그 아이의 힘을 믿었다. 아무 말 없던 아이의 입에서 드디어 좋아하는 게 나타났다. “별이랑 보석.” 그리고는 아이는 계단 미끄럼틀 삼매경에 빠졌다.

별이랑 보석을 좋아하는 아이, 그것을 한참이나 고민해야 대답할 수 있는 아이가 마냥 부러웠다. 좋아하는 것은 ‘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미루고’ 살아 왔던 나를 돌아보게 했다. 좋아하는 게 굳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저마다 좋아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왜 그렇게 되었냐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강요 받아온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굳이 고르지 않아도 반짝반짝하는 생(生)이 있다. 별과 보석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가 만들어 낸 그 순간 좋았을 무엇일 따름이다. 아이가 고민하는 시간이 별이고 보석이었다. 그 아이의 눈에서는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아요.”하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주인공이 되면 배경의 소리에 둔해지는 데도 말이다. 나는 카페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배경이 되어 간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다. 나는 이 배경이 되는 과정이 즐겁다. 산에서는 개구리 소리가 하루 종일 들린다. 주인공인 인간은 그 소리를 쉽게 듣지 못한다고 한다. 발화자는 나니까 개구리 소리 같은 배경음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개구리가 아까부터 울고 있잖아요.” 주인공은 모른다.

주변에 귀를 기울이니 세계가 풍요로워졌다. 나밖에 모르던 나인데, 주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요즘의 생활이 빚은 무늬이다. 그 무늬는 물결이며, 밤바다에서 빛나는 서치라이트를 보며 차인가? 착각할 정도로 바다 속에 묻혀 있는 요즘의 나날이다. 공간이 어수선해지면 한 번 큰 소리로 외쳐 보고 싶기도 하다. “제발 좀 조용히 해요.” 이건 내가 나밖에 모를 때나 하는 어리광이었다. 결국 나는 나라는 인간을 채워나가야 하니 그렇다. 주변, 주인공이 아닌 주변에 귀를 기울여 보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아도 생(生)은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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