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대로 세계일주]18. 온두라스 코판에서 '온천 가는 길'

▲ 온두라스 코판의 마코 앵무새 견학관.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케이 아일랜드에서 연일 스쿠버 다이빙을 하느라 차가운 물 속에 계속 있다 보니 '뜨거운 물'이 그리워졌다.

왜냐고?
난 뜨거운 물이나 사우나에서 지지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이니깐.ㅋㅋ

초기 마야문명의 온상인 온두라스 코판에서 '아구아 깔리안떼(온천)' 가는 투어가 있다고 해서 알아보니 왕복 45달러란다. 개인적으로 가면 15달러도 안 한다는데. 그래서 비록 스페인어는 잘 못하지만 과감히 혼자 가보기로 했다.

오전부터 게스트 하우스를 나와 안 되는 스페인어 실력을 총동원해 겨우 현지인들이 탄다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어느새 정오의 태양이 갈증을 유발하기도 했지만 어느 나라보다 화려한 소가죽 벨트에 하얀 챙 모자를 쓴 현지인들의 이방인을 향한 호기심 어린 눈길은 얼굴 두껍다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힘들어 13~14살쯤 보이는 아이가 파는 비닐봉지에 담긴 코코아 음료를 사서 마시며 잠시 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해 본다.

▲ 많은 이들이 마야 3대 문명의 하나로 꼽히는 루인을 보기 위해 코판을 방문한다.
그렇게 뜨거운 시선 속에서 약 한 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안타깝게도 첫 번째 시도는 실패.

온천가는 치킨버스가 와 냉큼 앉아 있었는데, 손님이 다 채워져야 출발하는 현지 버스의 특성으로 인해
40분을 넘게 기다려도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내가 온천가는 버스를 물어 보았던 현지인이 나에게 다가와 말한다.
20분 정도 더 기다리면 버스는 출발하겠지만 지금 이 시간에 온천을 가면 돌아오는 버스가 없다나. 헐~!

낮선 동네에서 미아가 되고 싶진 않아서 일단 그날은 철수하고, 새벽부터 준비하여 다음날 다시 도전!

근데 처음에 온천가는 투어를 문의했던 여행사의 가이드를 만났다.
그러면서 어디를 가냐고 묻기에 온천 간다고 했더니 버스 기사에게 가서 말을 건다.

내가 스페인어를 아예 못한다고 생각했던 이 엉큼한 아저씨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로 관광객들은 투어로 온천을 가고, 그러면 요금을 50달러 받는다 하면서 버스 요금을 비싸게 요구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관광객들에게 유달리 심하게 바가지를 씌우는 현지의 분위기를 이미 파악했기에 사전에 버스 요금을 다 확인한 것을 모르는 듯 했다.

하지만 괜히 속이 뒤틀린다.
하긴 어제와 오늘의 버스 요금이 다르기에, 현지인들의 정확한 버스 요금을 모르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이럴 땐 스페인어를 정말 유창하게 하고 싶다. 그러면 모두가 사기꾼은 아닐 테니 진실을 알 수 있을 텐데…….

암튼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없는 치킨 버스에서 승객이 다 차기를 1시간 동안이나 기다려서 겨우 출발하자 안도의 미소가 나오며 창밖 풍경이 절로 눈에 들어왔다.

▲ 정겨운 거리 풍경에 뜨거운 태양도 기분좋게 느껴지던 온두라스 코판 거리 풍경과‘이쁘다’라는 표현에 기분 좋게 웃으시던 코판에서 본 할머니.
근데 상당히 연세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섹시하게 차려입으신 온두라스 할머니를 보고는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눈치를 채고 쳐다보는 그분께 "보니따(예쁘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니
아름답다는 말에 싫어하는 여잔 없다더니 기분 좋게 웃으신다.

잠시 후 버스에서 옆자리 앉으신 할머니께 온천 간다고 말씀드리고 버스요금을 물으니 30램피라란다.
이런~! 나에겐 40램피라 요구했는데…….

괘심한 마음이 들어 중간에 버스 요금을 내라 할 때 나도 30램피라만 태연스럽게 주었다. 그랬더니 10램피 라 더 내란다.

내가 다른 사람은 30램피라인데, 왜 난 40램피라냐고 따져 물으며 요금 체계가 이상하다고 했더니 알아듣지 못하는 척 하면서 10램피라 더 내란다.

이미 아까 그 나쁜 여행사 직원의 말을 들은 후라 약 10분간 신경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악착같이 10램피라를 요구했다. 차 안의 다른 현지인들은 모르는 척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온천이 완전 외진 곳에 위치해 있는 것 같고, 이 버스가 나중에 나를 태워 주지 않으면 산악지역에서 완전 고립될 판이라 결국 요구한 돈을 더 주고 버스에서 내렸다.

▲ 링고 프라이스가 뭔지 확실히 보여준 '아구아 깔리안떼(온천)'
근데 더 심한 건 온천이었다.
똑같은 아구아 깔리안떼를 이용하는데, 외국인은 10달러, 약 185램피라, 현지인은 40램피라란다.

'링고 프라이스' 나름이지 이쯤 되면 너무 심하다!
여기서 '링고'란 ‘그린 고’를 줄인 말로 백인에, 돈 많고, 멍청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요즘에는 주로 관광객에게 이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관광객이 무슨 봉으로 보이는지…….
우리 같음 방문해 주고 소비해 주는 것에 고마워할 텐데, 이중 가격이라니.

이곳 온두라스만이 아니라 과테말라에서부터 몸으로 느끼는 이 부당한 차별 대우.
과테말라는 정부 차원에서 아예 관광객과 현지인들에게 다른 요금을 명시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리오둘세에 있는 작은 성 '카스띨로 엘 펠리페'의 경우 내국인은 10꿰찰, 외국인은 2배인 20꿰찰이라고 입장료에 명시되어 있었다.

관광객이 소비를 촉진해 주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매사에 꼭 링고 프라이스를 적용하는 현지인들과 정부.

그래도 힘들게 이곳에 온 만큼 포기할 순 없기에 씁쓸한 마음으로 입장했다.
천연 유황온천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우수한 온천 시설에 비하면 원시시설이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그래도 간만에 뜨거운 물에 지니니 아까의 부정적인 기분은 어느덧 저 멀리 사라지고 좋기만 했다.

언제까지 있고 싶지만 돌아갈 길이 만만치 않은지라 2시간 만에 온천을 끝내고 언제 올지 모르는 치킨 버스를 20분쯤 기다리고 있는데, 온천 옆 정말 1평도 안 돼는 허름한 가게 앞에서 큰 트럭이 막 출발하려는 걸 발견했다.

▲ 온두라스 코판에서는 루인을 보는 것 말고도 온천가기, 마코 앵무새 견학관과 말타기 등 다양한 체험들을 할 수 있었다. 온천에서 돌아오는 길에 맘씨 좋은 트럭 운전사도 만났다.
마침 운전석 옆에 남·여 한 쌍이 타고 있기에 과감히 히치하이킹에 도전했다.
무작정 달려가 “코판”이라고 외치니 트럭 기사가 시원스럽게 태워 준다.

고마움을 표현하고, 안 되는 스페인어와 바디랭귀지로 옆자리에 앉은 커플과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코판에 도착해 내리면서 차비를 주려니 착한 기사총각이 웃으며 거절한다.

갑자기 하루 종일 링고 프라이스 때문에 속상하고 흥분했던 맘이 싹 가시면서 “무차스 그라스아스(고맙다)!”를 남발해 주었다.

그래, 여행자를 봉으로 아는 약삭빠른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 때문에 여행할 맘이 나는 거다.

급 훈훈해진 마음으로 행복한 하루를 마감하는 단순한 나!! ^ ^

 
이 글은 김윤경 시민기자가 2010년 7월부터 2011년 7월까지 13개월간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기록한 여행기다. 그녀는 1997년 해군장교로 임관해 근무하다 2010년 11월에 소령으로 전역했으며, 지금은 보건교사로 일한다. 고향은 경남 진주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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