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고등학교 2학년 물리시간이었다. 50대 초반의 여선생님은 엄하고 무뚝뚝한 분이었다. 한 학기 넘게 수업을 하는 동안 농담 한마디를 붙이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책상 사이를 돌며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당시 우리 또래의 아리따운 소녀였다. 사진 속의 그녀는 새하얗게 웃고 있었다. 선생님은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너희와 나이가 같다. 얼굴만큼이나 마음이 예쁜 아이다. 책을 좋아해서 국어선생님을 꿈꾼단다.”

질풍노도의 사춘기 남학생들은 환호했고, 교실은 열기로 가득 찼다. 거의 모두가 소녀의 남자친구가 되는 상상에 빠졌다.

“이 아이는 지금 백혈병을 앓고 있다.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고 있는 중이다.”

교실은 일순간 침묵에 빠졌다. 아이들의 표정은 굳어졌다. 목덜미에는 묘한 소름이 돋았다.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 오늘 선생님들은 너희에게 기도를 부탁하려고 한다. 기도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부디 이 예쁜 여학생을 이성으로 보지 말고, 너희와 함께 숨 쉬고 꿈꾸는 친구라 생각해라. 그리고 그 친구의 삶과 꿈에 대해 간절히 기도해 주기 바란다.”

교실은 더욱 고요해졌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는 아이들도 제법 보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마흔이 가까워 오는 나이가 됐지만, 그날처럼 간절하게 기도한 적은 드물었던 것 같다.

소녀가 완쾌했는지, 그녀가 꿈꿨던 국어선생님이 되었는지,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가 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꼭 그럴 것이라 믿고 있다. 그날 교실을 가득 채웠던 기도의 열기가 그럴 수 없이 뜨겁고 간절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18살 무렵의 꽃다운 아이들이 생사를 오가고 있다. 일주일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뉴스특보를 보다 이따금씩 두 손을 모은다. 행여 20여 년 동안 묻혀온 ‘삶의 때’로 기도의 간절함이 무뎌질까 손을 모으기 전에는 몇 번이나 손을 씻는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사망자는 계속 늘고 있다. 느는 것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고귀한 생명이며 꿈꾸는 청춘이라는 점에서 가슴은 하염없이 무너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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