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좋아~’ 뱀들의 기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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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좋아~’ 뱀들의 기지개
  • 하병주 기자
  • 승인 2009.04.21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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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사랑과 측은함으로 변하는 까닭은?

어릴 적 밤길의 최대 공포의 대상은 귀신과 뱀이었다. 그런데 둘 중 어느 것이 더 무서웠냐고 굳이 꼽으라면... 뱀을 택한다.

옛날, ‘전설의 고향’이라도 봤을라치면 아래채 뒤를 돌아야 있는 뒷간 가기가 예사 힘든 일이 아니었다. 깜깜한 밤길에 저만치 펄럭거리는 것만 마주쳐도 심장 뛰는 소리에 귀가 멍했다. 그 정도로 귀신이 무서웠다.

그런데도 마음 한 구석엔 ‘귀신은 허상’이라는 생각이 있었던가 보다. 마음속으로 ‘귀신은 없어. 아무 것도 아니야’ 이렇게 되뇌다 보면 조금씩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뱀은 달랐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실체’로서 공포였다. “뱀은 웬만해선 물지 않는다”라는 얘기도 들었고 “집 근처에 있는 뱀은 물지 않으니까 해코지해서도 안 된다”라고도 들었지만, 두려움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정확히 표현하면 ‘뱀을 밟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다.

이 두려움의 정체는 집 앞 골목에서의 기억과 관련이 깊은 것 같다. 어릴 적, 집 마당으로 들어서려면 양쪽으로 돌담인 긴 골목을 통과해야 했다. 여기에는 뱀이 자주 출몰했고, 언젠가 그 징그러운 뱀을 살짝 밟기까지 했다.

어둑어둑 했기에 잘 뵈지 않은데다가 예사 나뭇가지인 줄 알고 발을 내딛은 순간 뭔가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물커덩!’ 뱀을 밟았다는 생각에 머리가 쭈뼛 서고 까무러치듯 놀라 뛰었던 생각이 난다. 몸무게가 덜 실렸던지 다행히 뱀은 무사했던 것 같다.

그 뒤론 골목 지나기가 영 께름칙했다. 가능하면 날이 밝을 때 집에 들어가려 애썼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있는 법, 그럴 때는 발을 조심조심 딛거나 그냥 쏜살같이 달렸다. 몇 초의 짧은 시간이 왜 그리 길게 느껴지던지.

그리고는 마당에 도착해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난다. 논길을 걷다가 풀숲에 똬리 튼 뱀을 밟을 뻔 했던 일도 그쯤에 있었던 일이라, 이래저래 뱀이 신경에 거슬렸다.

묵은 옛 기억을 이렇듯 오래 더듬는 것은, 오늘 이 뱀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비슷한 장소에서 세 마리씩이나!!! 계절적으로 아직 이른 데다, 요즘은 뱀도 귀한 축에 드는지라 꽤나 반가웠다.

뱀을 만난 곳은 아침 출근길에 도롱뇽을 만났던 곳과 같은 사천시 정동면 예수리이다. 콘크리트 블록에 갇힌 도롱뇽이 어찌 지낼까 궁금해 점심께 다시 한 번 찾아가는 길이었다.

첫 번째 뱀은 오인숲에 있었다. 숲에서 나와 자운영이 활짝 핀 논으로 건너가려다 차소리에 화들짝 놀라 방향을 되돌렸다. 어제 내린 비에 젖은 몸을 말리려는 듯 바위 틈새로 들어가지 않고 느릿느릿 눈치를 살피며 움직였다.

다음은 아침에 도롱뇽을 만났던 그 도랑에서 뱀을 만났다. 이놈은 허물을 갓 벗기라도 했는지 몸이 여려 보였다. 크지 않은 몸집을 잔뜩 웅크리고서는 햇볕을 쬐는 모습이었다. 다가가도 움직일 생각이 없는지, 기력이 없는지 그대로였다.

하지만 아침에 봤던 도롱뇽은 뵈지 않았다. 도랑을 따라 좀 더 올라가니 도롱뇽 열 마리가 한 곳에 어울려 있었다. ‘아직 새들의 먹이가 되지는 않았구나’ 마음을 쓸어내리는데, 저만치 물살을 가르는 놈이 있었다. 또 뱀이었다.

이 녀석의 몸은 붉은색 푸른색 검은색이 섞였다. 흔히 말하는 꽃뱀이다. 도망가는 속도보다 더 빨리 다가가니 몸을 멈추고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벽을 타고 오르려 애를 써보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이놈도 영락없이 갇힌 신세였다.

이 ‘직선의 미로’에는 먹이사슬에 얽혀 있는 개구리와 도롱뇽이 함께 있었다. 그럼에도 이 뱀은 먹이를 먹을 생각은 없는 듯 위아래를 쏘다니기만 했다.

탈출구는 위와 아래에 있다. 물을 따라 오르든지 아니면 내려가든지 오직 한 방향으로만 달려야만 살 수 있는 것이다. 양쪽 모두 200미터 남짓 거리, 이놈이 ‘직선의 미로’를 통과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어릴 적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뱀. 하지만 오늘은 왠지 사랑스럽고 측은한 마음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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