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온 기고] 우리 시대 '우상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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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서 온 기고] 우리 시대 '우상의 눈물'
  • 이철현
  • 승인 2014.10.07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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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현 삼천포공업고등학교 교사

▲ 이철현 삼천포공업고등학교 교사
기념일은 인간이 망각의 존재라서 만들지 않았을까. 잊지 않아야 할 뭔가가 있기에 함께 모여 해마다 지나온 발자취를 뒤돌아보는 것이리라. 그런 면에서 나도 뉴스사천의 창간 6주년(주간신문 1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초대되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학교 밖의 일을 까맣게 잊는다. 가끔씩 들려오는 바깥소식은 아득히 먼 ‘딴 세상’이다. 하지만 어떤 것은 울컥하는 감정이 가슴까지 치밀게 하고, 또 어떤 것은 며칠을 우울한 기분으로 가라앉게 만든다.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세상의 뒤틀린 편린을 볼 적이면 더욱 그렇다.

전상국의 소설 ‘우상의 눈물’로 수업을 했다. 주인공 기표는 ‘학교짱’으로 교내에서 온갖 악행을 일삼아 아이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다. 학교는 기표를 밖으로 몰아내고 싶어도 사건마다 번번이 다른 아이가 뒤집어쓰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한다. 담임이 반장 형우를 앞세워 ‘기표 돕기’라는 명목으로 그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공개하고 나서야, 기표는 아이들에게 동정 받는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제 발로 학교를 나간다.

그랬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그 시절의 학교는 정말 그랬다. 사고치고 애먹이는 아이들은 가차 없이 학교 밖으로 내쫓겼다. 폭력을 쓰기는 선생님들도 다르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런 이가 ‘능력 있다’ 여겨져 우리는 그이 반에 들어가기를 바라곤 했다. ‘학교짱’을 둘러싼 패거리들에도 역시 숨도 못 쉬고 그들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애썼다. 스스로 해야 할 공부임에도 선생님이 이끌어 주길 바라고, 기꺼이 폭력에 굴복하고 노예가 되었다.

기표와 같은 아이들이 나오지 않도록 그 같은 처지의 아이들을 사회가 보살펴야 한다. 그것이 ‘정의’가 아닐까? 생각거릴 던져두고 마치려는데, 뒤에 앉은 한 아이가 퉁퉁거리며 따진다. 여성가족부가 1년 동안 쓰는 예산이 6천억씩이나 된단다. 복지란 이름으로 엄청난 국가 예산이 쓸데없이 낭비되고 있단다.

요즘 한참 말 많은 그 누리집을 들락거리나 보다. “여성가족부 예산이 6천억이라면 엄청나게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많은 것인지는 정부의 다른 부처 예산과 비교한 후의 결론이어야 설득력이 있다”고만 말하고 나왔다. 내가 가진 지식으로 아이를 윽박지르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만 낼 뿐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더니 그 아이가 작금의 사태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 같다. 나의 무관심과 비굴한 태도로 조성된 세상이 아이의 눈을 저렇게 뒤틀리게 했지 싶어 마음이 무겁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며 자랑에 찬 작금의 시대에도 기표가 학교 밖으로 내쳐지던 그 당시로부터 별로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아이가 승용차를 훔쳐 남해에서 창원까지 도주하다가 잡혔다. 언론은 ‘촉법금지’ 조항이 청소년의 범죄를 조장하고 있다며, 연령대를 낮추어 그 조항을 강화해야 한다고 연일 신문과 방송, 인터넷을 달구었더랬다.

오늘날의 기표다. 부모가 돌보지 못하는 사춘기의 그 아이에게는 늙은 할미의 얼마 남지 않은 기운으로 줄 수 있는 건 안타깝고 무기력한 마음뿐. 든든하게 기댈 언덕도, 상처 입은 마음을 감싸줄 따뜻한 품도 없다.

강화된 ‘촉법금지’ 조항으로 내쳐질 아이가 맞닥트릴 세상은 가난에 몰린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곳이요, 구조조정으로 아득한 첨탑 끝에 매달린 노동자에게 소송으로 억대의 빚을 지워 가정을 파탄 내는 곳이다. 막되 먹은 망종들이 혈육을 잃어 단식으로 절규하는 유족들 앞에서 폭식시위를 벌이며 패악질 하는 곳이다. 친일파 후손들이 일제 식민지배의 기억을 분칠하기 위해 국가 행정력을 동원하여 학교 현장을 뒤흔드는 곳이면서, 공영 방송사의 신임 이사장이 할애비의 친일 행적을 옹호하며 그 화장마저 걷어치우고 두꺼운 민낯을 생으로 자랑하는 곳이다. 하다가 하다가 이제는 해방직후 30만에 이르는 사람들을 ‘빨갱이’라 딱지 붙여 폭력을 휘두르고 살인을 서슴지 않던 깡패조직 ‘서북청년단’을 추종하는 무리까지 등장했다. 윤리는 고사하고 상식마저 패대기쳐진 야만의 땅이다.

폭력에 굴복하고 살기는 기표와 같은 시대에 학교를 다니던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 싶다.

언제부턴가 국가 권력과 자본이 부당하게 휘두르는 폭력을 목격하고도 모른 척 외면했다. 학교라는 관료조직의 합리적이지 못한 관행도 고개를 돌려버리거나 눈감아 버렸다. 나서봤자 동료들에겐 회의란 명목의 일방적 전달 시간을 늘어뜨리는 귀찮은 말썽꾼일 뿐이다. 중뿔나게 나서봐야 좋을 게 없다는 보신주의를 몸과 마음에 두른 지 제법 오래다.

주역에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라는 말이 있다. ‘서리를 밟을 즈음이면 머지않아 얼음이 언다’는 뜻이다. 파시즘의 암울한 그림자가 우리 곁에 서서히 드리우고 있는데도 우리는 겁먹고 순한 양이 되어 침묵이나 지키고 있다. 꿩이 맹수를 피한다고 머리를 풀숲에 처박은들 제 눈만 가리지 자기 몸뚱이는 가릴 수 없다. 내가 딱 그 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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