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상한 경상대 행정학과 교수
영화 ‘국제시장’이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 중 흥남 철수 피난민으로 부산에 내려와 국제시장에서 동생들을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먹고 살기에 정신없었던 장남 덕수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덕수는 남동생의 대학 진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광부가 되어 독일로 떠나기도 하고, 여동생의 결혼 밑천 장만을 위해 전쟁이 한창인 베트남에 기술자로 가기도 한다.  덕수는 국제시장에 있는 고모의 꽃분이 가게에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흥남 부두에서 헤어진 아버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힘들게 모았던 돈으로 꽃분이 가게도 인수한다. 가족을 위해서만 힘들게 살아야 했던 덕수는 어느덧 칠순이 넘어서 이제 아버지가 찾아오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독일에서 만나 결혼하게 된 간호사 아내와 나란히 앉아 영도다리 앞 바다를 바라보면서 아내에게 가게를 팔자고 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영화 국제시장은 정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 영화 속의 덕수는 가족을 위해 고단하고 힘들게 살아야만 했다. 그에게 보수와 진보의 정치 색깔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덕수에게는 지방자치와 지방선거도 모르는 말이었다.

덕수가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국가는 그를 위해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다. 1949년에 지방자치법이 제정되었으나, 지방선거를 미루어 왔던 이승만 정권은 장기집권을 위해서 전쟁 와중인 1952년에 최초로 지방선거를 실시하였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지방의회를 해산하고, 지방자치법의 효력을 정지시켜버렸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외화벌이를 위해서 덕수와 그의 아내와 같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에 파견시켰다.

1972년 영구집권을 위해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을 제정하고, 그 부칙 조항에 ‘지방의회의 구성은 조국의 통일 때까지 유예한다’는 조치를 취했다. 박정희 사후, 1980년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군사정군은 5공화국 헌법 부칙에 ‘지방의회의 구성을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감안하여 순차적으로 한다’고 하여 지방자치의 실시를 유보하였다. 군사정권 하에서 지방자치가 전면 금지되는 동안 수많은 덕수는 먹고 살기 바빠서 지방자치에 관심을 둘 수 없었다.

그러나 살고 먹는 것이 곧 정치고 지방자치이다. 그렇지 않으면 박근혜 대통령 말처럼 ‘즐거우나 괴로우나 항상 나라 사랑해야 되고’, 영화 국제시장에서처럼 ‘부부싸움 하다가도 애국가가 들리니까 국기배례’를 시키는 국가가 다시 등장할 수 있다.

그런 국가가 덕수에게 해준 것은 지방자치를 없애고, 한 눈 팔지 말고 오로지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먹고 살기 바빠도 2015년 새해에는 정치와 지방자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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