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어눌한 기자의 ‘황당한’ 지역경제발전 세미나 참관기

경남 사천에서 골프장을 건설하고 있는 한 기업이 마련한 '지역경제발전 세미나'. 세미나라기 보단 사업설명회에 가까웠다. 사진은 2부 행사로 프로 골퍼가 골프 특강을 준비하는 모습.
9일 오후3시, 지역경제발전을 위한 토론의 장이 열린다고 해서 사천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을 찾았다.

대공연장 입구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연예인들과 프로 골퍼의 사진이 도배를 하고 있었다. 세미나 주관처가 타니골프앤리조트(주)인 만큼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모양새’였다. ‘골프장 홍보를 겸한 행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 아니던가.

그럼에도 ‘사천진주지역 위상 확대 및 지역경제발전을 위한 세미나’라고 밝힌 만큼 뭔가 지역경제에 대한 분석이나 전망 같은 것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웬 걸? 행사안내데스크에 세미나 자료를 달랬더니 ‘아시아 골프메카’ ‘골프 사관학교로 등극’ 등의 글귀가 화려한 회사 홍보자료를 내놓았다. “이것 말고 세미나 자료는 없느냐”라고 물었더니, 없단다.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하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기왕 발걸음을 했으니 잠시 행사를 지켜보기로 했다. 행사장에는 기자 말고도 250명 정도가 자리를 함께 했다. 저들은 무슨 이유로, 뭘 기대하면서 이 행사를 지켜보는 걸까 궁금했다.

세미나 자료로 둔갑한 '기업홍보책자'.
본 행사에 앞서 잠시 골프장을 홍보하는 영상물이 흘렀다. 경남 사천시 곤양면 가화천 강가에 들어서는 36홀 규모의 타니골프장. 풍수지리상 금구입수(金龜入水)형으로, 엄청난 명당자리란다. 이곳에서 ‘왕의 휴식’과 ‘인생의 여유’를 즐기고 ‘세계수준의 감동’을 선사 받으란다.

순간 입 안이 씁쓸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조직적인 반대운동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오래전 터 잡고 살아가던 사람들은 몇 푼 보상금에 뿔뿔이 흩어졌다. 기필코 땅을 내놓지 않겠다고 버티던 사람들에게는 ‘강제수용’이라는 ‘참 쉬운’ 행정조치가 내려졌다.

지난해 가을이었던가. 환경단체인 녹색연합과 환경소송센터 그리고 골프장이 들어서는 경기도 안성의 한 마을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골프장 건설을 위해 토지를 강제수용 할 수 있게 한 법률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논쟁의 핵심은 ‘골프장이 얼마나 공익적인가’라는 점이다. 서민들은 꿈도 못 꿀 ‘골프회원권’을 분양하는 등 철저히 이윤을 추구할 뿐인 골프장이 ‘공공체육시설이라서 강제수용 할 수 있다’는 게 적어도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법이다. 다만 헌법소원의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기업홍보 전시관과 다름 없는 '세미나' 행사장 입구.
홍보영상물이 끝나자 한 때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그러나 지금은 보기 힘든 한 개그맨의 사회로 ‘세미나’는 시작했다. 회사대표와 골프업계 관계자, 전직 국회의원과 프로골퍼, 유명 연예인과 잘 나갔던 전직 운동선수, 현직 도의원과 시의원 등이 소개되고, 그 중에서도 몇몇은 긴 축사를 쏟아냈다.

현직 사천부시장도 단상에 올라 축사를 남겼다. 그러나 도대체 뭘 축하한다는 것인가? 언젠가 문을 열 골프장 개장을 미리 축하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오늘 가지는 ‘지역경제발전 세미나’ 개최를 축하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아리송했다.

골프장이 들어서면 골프가 대중화되고 나아가 사천의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니, 이는 근거가 있는 말인가 아니면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린가. 그리고 세미나를 가장한 기업설명회가 진행되고 있음을 뻔히 보면서도 “세미나를 열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소릴 들으니 내 낯이 뜨거워졌다. 평소 ‘그 분’을 존경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일 게다.

타니골프앤리조트 김성수 대표.
지루한 축사가 끝나자 행사주관 회사의 대표가 단상에 올랐다. 궂은 날씨에도 참석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겼고, 공정률 60%를 보이고 있는 골프장공사를 잘 마무리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는 골프장 경영계획에 관한 밑그림을 밝혔다. “골프장도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며 차별화를 선언했고, 이를 위해 골프연수기능을 부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일종의 ‘골프국제학교’를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회사대표 본인 입으로도 “근거가 과학적이지는 않다”면서 한 해 15만 명이 사천을 찾고, 이들이 1인당 300만원을 씀으로써 연간 5000억원에 가까운 경제유발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에 대비해 도로와 숙박시설 등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고 참석자들에게 호소했다.

이것이 이날 세미나의 전부였다. 토론세미나 자료는 회사 홍보책자가 전부요, 그 흔한 파워포인트 자료도 없었다. 기업설명회 또는 사업설명회인 셈이었다.

뒤이어 한 대학교수가 지역의 문화와 역사, 관광에 관한 정보를 정리해 발표하긴 했지만 지역경제발전을 위한 ‘토론 발제’로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날 행사가 '지역경제발전을 위한 세미나'임을 알리는 홍보물과 해당 기업 연예인 홍보대사들의 사진들.

2부 행사는 더 가관이었다. 유명 연예인들에게 골프장 홍보대사 임명장을 전달하더니 아예 골프 특강을 열었다. 무대를 즉석 스크린골프장으로 꾸미더니 프로골퍼가 이른바 ‘레슨’을 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떴고, 골프에 관심이 있거나 내빈으로 초대 받은 사람들만 남았다. 물론 기자도 더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타니골프앤리조트(주)는 사천시민에게 사과하라!

엄청난 돈을 들여 사업을 벌였을 골프장 회사 입장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경기침체로 회원권 분양 등에 어려움도 있을 것이고,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으로 골프장을 바라보는 지역민들도 있기에 적극적인 홍보전략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기업홍보행사를 ‘지역경제발전을 위한 세미나’로 둔갑시킨 것은 너무 심했다. 그것이 수도권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는 ‘관행’으로 이해되는 수준인지는 알 바 아니다.

하지만 이 행사에 사천시의 부대표 격인 부시장을 부르고 시의원들과 공무원들의 참석까지 이끌어 냈다면 그에 걸맞은 내용을 담았어야 했다.

행사 이름만 보고 ‘세미나’ 장소에 들렀던 한 시의원은 “속았다”며 제대로 알지 못한 자신을 되레 책망했다. 사천시민의 손으로 뽑은 대표가 왜 기업에 속고 자신을 탓해야 하나?

이날 세미나 2부 행사는 연예인 홍보대사들에게 임명장을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타니골프앤리조트(주)에 당부하고 싶다. ‘지역경제발전 세미나’는 명백한 기업홍보행사였고, 사천시민들을 속이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사천시민들에게 공개 사과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불필요한 오해로 사업에 차질을 빚었다”는 말을 회사대표가 다시 하지 않아도 될 것이요, “행사를 계기로 지역사회와 적극 소통하고 싶다”던 바람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불필요한 오해로 사업에 차질이 많았다. 우리만 떳떳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적극 대응하지 못한 점 반성한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지역사회와 적극 소통해 나갈 것이다.”

김성수 대표가 이날 행사장에 참석했던 250여 명에게 했던 이 인사말에 진심이 담겼기를 믿고 싶다.

이날 세미나에는 최만림 사천부시장과 관계 공무원 그리고 시/도의원들이 다수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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