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영화 포스터.(사진=메가박스)

과거에는 날씨가 더워질 즈음해서 반드시 한국형 호러/공포영화가 개봉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하나둘 사라지더니 이제는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개인적으로 호러영화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 터라 아쉽지는 않으나, 그래도 가끔은 생각나기도 한다. 단, 조건이 있으니 피 칠갑한 분장으로 화면 앞에 불쑥 나타난다거나 쾅하는 효과음으로 억지 공포감만 조성하는 건 제외하고 말이다. ‘여기에서는 이런 장면’이라는 빤한 클리셰는 억지와 과잉이라는 구태 아닌가. 아무튼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가장 좋아했던 영화는 <여고괴담2>이었으나 2007년 8월부터 후순위로 밀렸다. 가슴 옥죄는 서늘한 사랑이야기를 공포라는 형식을 빌어서 보여주는 기묘한 영화 <기담>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다소 장황해졌는데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기담>의 정식 감독과 이웃집에 살인마가 산다는 이야기 <이웃사람>의 김휘 감독의 공동연출이다. 장르영화를 감각적으로 펼쳐 보이는 두 감독이 손을 잡은 만큼 기대감은 커질 수밖에 없고, 아니나 다를까 늘씬하고 광택 반지르르한 수제 명품 구두가 탄생한 느낌이다. 사실 매끄러운 전개의 전반적인 힘은 원작에서 나온다. 정식+김휘 감독은 서스펜스의 마술사로 불렸던 빌 S. 밸린저의 명작 ‘이와 손톱’을 우리나라의 해방 전후시대로 고스란히 옮겨놨으며, 소설의 백미라고 할 절묘한 교차 플롯을 화면으로 멋지게 구현해 냈다. 마치 2인3각 시합을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일반적으로 2인3각 시합에서 누구보다 빨리 결승점을 통과하는 팀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나 힘 좋은 사람이 아니라 호흡이 잘 맞는 팀이다. 그런 면에서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영화 내적 외적 모두 2인3각 시합과 상당히 닮았다. 해방 전 경성을 무대로 활약하던 마술사가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와 해방 후 한 석조저택에서 벌어진 사체 없는 살인사건, 이 두 가지를 절묘하게 엮어서 범죄스릴러와 법정스릴러를 동시에 보여준다. 대체로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쫓다가보면 이도저도 아니게 갈팡질팡하다가 빈손으로 돌아서기 일쑤이건만, 양손에 한 마리씩 거머쥔 걸 보니 장르영화의 깊은 이해를 가진 두 사람의 감독이 얼마나 호흡이 잘 맞았던 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고전’이라는 단어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감상하는 게 좋다. 시대적 공간적 배경도 그러하거니와 뒤통수를 치는 반전보다는 뚝심 있게 한발자국씩 나아가는 모양새에서 고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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