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영화 포스터.

아마도 한국인들-중장년층이 원더우먼을 기억하는 방식은 획일적일 것이다. 슈퍼맨은 ‘크리스토퍼 리브’로 정리되듯이 원더우먼은 TV브라운관을 누비던 8등신 미녀 ‘린다 카터’였을 뿐이다. 그 시절에는 다들 그랬다. 먹고 살기 바빠서 DC와 마블코믹스를 관통하는 세계관을 인지하고 향유하는 건 부잣집 아이들뿐이었으니.

아무튼 린다 카터의 색채가 워낙에 강렬했던 탓인지 수많은 원더우먼의 후보가 거론됐음에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가 마침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첫 만남도 정말 좋았다. DC 최고의 망작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유일하게 존재감을 뽐냈던 캐릭터가 원더우먼이었으니까. 쓸데없이 무게 잡고 어깨에 힘주기 바쁜 두 마초 히어로 때문에 인상만 쓰던 중 그녀 덕분에 숨이라도 돌릴 수 있었다. 더불어 DC에 대한 희망 또는 미련도 남았다. 자, <원더우먼>은 어떻게 우리에게 돌아올 것인가.

그리하여 등장한 ‘갤 가돗’의 <원더우먼>이 DC도 구하고 세상도 구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린다. 다른 히어로물과 달리 무려 141분이나 되는 길고 긴 러닝타임 내내 홀로 날고 기었으니, 그야말로 고군분투라는 사자성어가 저절로 생각이 난다. 경상도 표현으로 ‘쎄가 빠지게 뛰 댕기’며 사악한 아레스의 손에서 세상을 구해냈으나, 안타깝게도 DC를 구하기에는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다. 현실적으로 갤 가돗의 <원더우먼>이 구해야 할 건 세상이 아니라 침몰하는 DC였는데 말이다. 그래도 다 꺼져가는 아궁이에 힘찬 부채질 몇 번 정도는 해준 것 같다.

전반적으로는 원더우먼의 탄생부터 세계의 위기를 구하기까지 짜임새는 챙겼다. 그러나 구성상의 표현일 뿐 한숨 나오는 장면이 너무나 많아서 좋은 말 하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주춧돌 번듯하게 세우고 멋지게 지붕까지 얹었지만, 그 안에 채워져 있는 것은 고물상에서 주워와 주저앉기 일보직전의 낡은 세간이랄까. 수많은 등장인물 가운데 존재감을 가진 캐릭터는 달랑 둘이며, 멋지게 폼 잡는 원더우먼 뒤로 소꿉놀이인지 전쟁놀이인지를 하느라 다들 바쁘다. 게다가 한없이 늘어지기만 하는 비장한 음악은 소음처럼 들린다. 건질 것 하나 없는 2시간 21분짜리 ‘원더우먼 비긴즈’라니.

그나저나 갤 가돗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남성 못지않은 힘이 넘치는 액션, 무엇보다 미모! 좋은 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갤 가돗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원더우먼>의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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