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 포스터.

좋은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닌 어중간한 마음이 아니라 좋고 싫은 것을 동시에 분명하게 느끼는 양가감정, 이것을 가장 쉽게 표현할 수 있는 한 단어 ‘애증’.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다시 만날 때마다 애증이라는 단어만 줄기차게 맴돈다.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변신로봇을 실사 CG로 만났다는 그 충격은 어떠했던가. 주차장에 세워진 모든 차들이 갑자기 일어날 것만 같았고, 도로 위를 질주하던 차들이 벌떡 몸을 일으켜 뛰어다닐 것만 같았다. 심지어 질주하던 자동차 불빛마저 설레었건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로망은 첫 편으로 끝났다. 이어지는 속편들은 몸집만 부풀렸을 뿐 1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후속편이 찾아올 때마다 극장을 방문하는 것은 애증의 단계를 지나 집착에 가깝다. 후회만 남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좌불안석 안 가고는 못 배기는 상황이 마치 희극에 가깝다. 무슨 결계를 넘는 것이 이보다 더 망설여질까. 안 보면 그만임에도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더듬는 처량한 마음이 된 결과, 151분이란 긴 러닝타임 내내 산산이 부서진 스토리와 토할 지경인 CG에 시달리게 된다. 세상에 이런 시리즈를 만드는 용감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의 개봉을 앞두고 “어쨌든 여러분은 이 영화를 보러 올 것”이라고 외치던 마이클 베이 감독의 자신감은 작품에 대한 믿음보다는 골수팬들의 골수를 뽑아먹고도 남겠다는 비웃음처럼 보인다.

그렇다 부끄러움은 전적으로 팬들의 몫이다. 이번에는, 이번에야 말로…… 하는 기대감을 가졌다는 자체도 부끄러울 뿐이다. 아무리 잘 만든 시리즈도 옥석은 있고 그 중 망작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소 미흡하다싶은 것이 한 편씩은 있는 법이다. 보통은 그렇다. 그러나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1편을 제외하고 줄곧 땅만 파더니, 마침내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에 이르러서는 망작을 넘어 막장의 경지에 다다르는 위업을 이룩해냈다. 각본이 엉망이라는 평가를 한 방에 뒤집겠다며 라이터스 룸(Writer's Room)을 만들어 무려 열두 명의 각본가를 모았다고 하더니, 이런 희대의 졸작 종합선물세트를 준비하느라 그토록 고심했던가. 차라리 지나가는 동네 꼬마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어보는 것이 훨씬 나을 뻔했다.

만인의 사랑을 받은 캐릭터 ‘범블비’를 주인공으로 스핀오프가 제작된다는 소문만큼은 반갑다. 졸작의 산실 라이터스 룸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니 어느 정도 내려놔야 할 것은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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