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도랑마저 ‘그저 물이 지나가는 길’로 전락하는 서글픈 현실

농촌 들판을 흐르는 물길조차 콘크리트로 뒤덮힌 지 오래다. 신설 초등학교 옆을 흐르는 이 개울을 살아 있는 물길로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는 걸까.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물을 가까이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큰 강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였고, 문명이나 도시도 이런 곳에서 발달했다지요.

큰 강 주변에 큰 도시가 발달했다면, 작은 시내나 개울을 따라서는 오밀조밀 마을이 들어섰습니다. 어쩌면 물길의 크기가 마을의 크기를 미리 정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강이나 시내, 개울이 사람들의 생활과 아주 밀접했지요. 어른들에겐 빨래터는 물론 이런 저런 일터이기 일쑤고, 한 여름엔 더위를 식히는 쉼터로도 그만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겐 각종 물놀이에 고기잡이 등, 사실 놀이터에 가까웠습니다. 삶의 한 부분이나 마찬가지였지요.

물론 지금도 그 때와 비슷하게 물을 끼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마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강, 시내, 개울이 사람과 ‘따로’입니다. 이는 물길이 스스로 택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왕따’ 시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람들의 욕심 때문일까요? 아니면 기술력을 과신한 오만 때문일까요? 물을 오로지 이용하고(利水), 다스리는(治水) 대상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커졌습니다.

개울 왼쪽은 초전공원이요 오른쪽은 신축공사 중인 사남초등학교다.
이 이수와 치수, 사람들의 욕심을 채워주는 도구는 바로 콘크리트! 콘크리트는 이제 아주 작은 토목공사에라도 없으면 안 될 단골 재료가 되었습니다.

논과 논 사이 작은 도랑조차 콘크리트 블록으로 대체된 요즘입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도랑에 물이 마르면, 미꾸라지를 비롯한 많은 생명들은 어디를 파고들어야 할까요.

사천시 사남면 푸르지오아파트 앞에는 멋진 초전공원이 있습니다. 다양한 수생식물이 자라고,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닦여 있어 찾는 이가 많은 줄 압니다. 하지만 물이 깊어 어른이나 아이나 연못에 발을 담그기는 위험하지요.

그리고 그 동쪽으로 초등학교 하나가 들어서고 있는데, 그 이름이 ‘사남초등학교’랍니다. 내년이면 수 백 명의 어린이들이 와글거리겠지요.

사남초등학교 뒤를 돌아가는 물길마저 '배수로'란 이름으로 콘크리트에 생명을 잃고 있다.
이 초전공원과 사남초등학교 사이에 작은 물길이 있는데, 지금 공사가 한창입니다. 알아보니 한국농촌공사가 벌이는 사남지구배수개선사업이라 하는군요. 아마도 평소 물이 잘 안 빠졌나봅니다.

물이 잘 안 빠지면 들판이 물에 잠길 터, 공사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배수개선사업, 농수로개선사업 이런 사업들을 함에 있어 도랑 바닥과 양 벽을 꼭 콘크리트로 발라야 하는 지는 의문입니다.

어른 키만큼 되는 깊이에 콘크리트로 에워싸인 물길! 이것은 더 이상 생명을 품고 살찌울 수 없는, 그저 ‘물이 지나가는 길’일 뿐입니다. 게다가 사람이 다가가고 내려설 수 없는, 고립무원의 공간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물길을 저렇게 밖에 못 만드는 걸까’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순간입니다.

어떤 이는 예산타령도 할 것이요, 어떤 이는 ‘그냥 배수로이지 않느냐’라고 반박도 하겠습니다.

학교를 휘감은 물길은 들판으로 이어지지만 여기도 ㄷ자 콘크리트 물길만 기다리네요.
물론 예산이 중요하지만, 그 예산은 어떤 물길을 만들 것인지 생각 속에서 나오는 것이요, 생각이 있다면 예산이 부족하더라도 나름의 답을 찾아 노력할 것입니다.

아무리 배수로라고 하더라도, 그곳은 엄연히 봄부터 가을까지 끊이지 않고 물이 흐르는 곳입니다. 큰 저수지에서 내려와 사남들을 적신 물이 바다로 내려서기 직전에 마지막 생명의 기운을 나눠주는 곳입니다.

다슬기도 물고기도 수중식물도 얼마든지 자랄 수 있는 곳입니다.

초전공원에 마실 나온 인근 주민들이 그 도랑에서 아이들과 함께 발을 담그길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요? 근처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도랑에서 야외수업 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너무 사치인가요? 수업을 끝낸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바탕 물장난을 치고 옷을 더럽힌다면 아이들의 엄마들이 싫어할까요?

여러 가지 상상을 해봅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살아 있고 다가갈 수 있는’ 물길에 흠 잡을 데가 별로 없습니다.

근처에 공원이 있다지만 그저 눈요기에 불과합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저곳에 뛰어들고 싶어 하지요.

어디는, 콘크리트로 뒤덮였던 데를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걷어내고, 거기에 억지로 물을 퍼 올려 ‘생태하천임네’ 하며 자랑하니까, 사람들은 또 거기가 좋다고 수없이 모여든다 합니다.

그래도 ‘거기는 대도시니까’하고 우습지만 보고 넘길 수 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여기는 그야말로 시골입니다. 자연이 가까이 있는 이런 시골에 살면서 ‘살아 있는 개울’ 만나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어디 될 말인가요?

하긴, 작은 개울도 모자라 이제는 낙동강을 비롯한 4대강을 콘크리트로 바르겠다고 하는 판에, 어쩌면 모든 것이 저의 욕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꿈꾸고 싶습니다. 초등학교를 돌아 흐르는 개울의 콘크리트가 걷히고, 아이들이 돌을 들추며 물고기 잡는 풍경을 그려 봅니다. 지난 봄, 졸지에 갈 곳을 잃어 헤매던 도롱뇽을 더 이상 만나지 않길 바랍니다.

아마도 그때는, 사천지역 들판을 흐르는 크고 작은 도랑들은 물론이요, 대한민국 모든 산야도 딱딱한 콘크리트를 어느 정도 털어낸 뒤겠지요. 그날을 기다려봅니다.

멀리 신설 중인 학교와 공원 그리고 사남들 일부입니다. 농촌이면서도 생명 깃든 물길을 아이들에게 줄 수 없다는 게 서글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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