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애드 아스트라>

▲ '애드 아스트라' 포스터

‘우주’라는 말이 주는 울림은 우리가 모르는 우주의 넓이와 깊이만큼이나 넓고 깊다. 닿을 수 없는 것에 동경이나 환상으로 인한 울림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인 끌림에 기인하는 것이 더 크다. 그래서 우리는 우주를 꿈꾸고 우주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 이제는 클래식이 된 <스페이스 오디세이>부터 비교적 근작인 <인터스텔라>, <그래비티>에 이르기까지, 관찰을 넘어 성찰에 이른 명작을 보며 매혹적인 끌림에 몸을 맡긴다. 그래서 <애드 아스트라>는 어떤 모습을 한 우주를 바라보고 있을까.

카메라는 관찰하는 것은 우주이지만, 영화가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인간 내면의 또 다른 우주다. 끝을 알 수 없는 두 세계는 만났다가 떨어지고 지켜보다 외면하면서 결국은 조응한다. 이 거대한 여행의 끝은 결국 인간 혹은 개인으로 귀결된다. 청춘의 아이콘이던 브래드 피트와 인간 내면의 기록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줬던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이제 그들의 대표작 자리에 <애드 아스트라>를 올려놓을 듯하다. 

놀랍도록 선명하고도 아름다우며, 영화의 주제의식 혹은 성찰의 깊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쩌면 <애드 아스트라>는 우주 영화의 새로운 준거를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른다. 완성된 배우의 깊이와 예측할 수 없는 우주가 만나 공명하는 것을 보는 것은 즐거움을 넘어 스펙터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스페이스 오페라’여, 흥해라!

[우주에 관한 여담] 우주는 (시간적, 경제적) 여건이 안 돼서 다녀오지 못하는 어느 먼 나라 정도로 뭉뚱그릴 수 없는 단어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태양계에 비해서 70만 배쯤 작고,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는 직경이 대략 15만 광년이다. 은하계를 지구만 하다고 보면 우리가 사는 지구는 겨우 머리카락 굵기의 100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은하계보다 윗 단계에 ‘우리은하군’이라고 부르는 Milky way galaxy가 있으니, 우리은하군이 은하계를 찾겠다고 전자현미경을 들이대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끝인가? 마찬가지로 국부은하군이 우리은하군을 상대로 전자현미경 놀이를 하고, 그 위로는 은하단, 초은하단이 있어서 각각 전자현미경 놀이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관측 가능한 우주 Observable Universe가 있으니, 가설로는 유니버스 뒤로도 5단계가 더 있다. 인간의 시각으로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우주!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찾기 힘들어서라는 농담이 결코 농담으로 그치진 않는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