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포스터.

얼마나 놀라웠던가. SF 영화임에도 어느 공포영화보다도 무서웠던 <터미네이터 1>에 이어, 전편보다 나은 후속편이 없다는 속설을 뒤집어엎은 <터미네이터 2>는 액체괴물이라는 도무지 불가능한 미션일 것 같은 악당을 출연시켜 SF 영화의 신기원을 이뤘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터미네이터’라는 다섯 글자 타이틀만 달고 나오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혀를 빼물었다. 

자본주의사회에 돈 되는 상품을 방치하는 건 죄악이다. 대량생산까지는 아니더라도 단물 빠질 때까지 생산해서 팔아먹어야 한다. 그게 미덕이다. 이리하야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단물 다 빠지다 못해 단단한 껌딱지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소비하다가는 질려버리고 말 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만들고 소비하는 주체 모두가 외면하는 사이 ‘터이네이터’라는 다섯 글자는 식어버린 죽 취급도 못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또 터미네이터라고?

다들 28년 만이라고 외친다. “I’ll be back”을 외치던 2편 이후 진정한 속편이라고 할 작품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 말이다. 판권을 돌려받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를 제작하면서 1, 2편 외에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이게 터미네이터 3편이라고 천명해버렸다. (졸지에 5편에서 악역으로 대활약했던 이병헌이 붕 뜨고 말았다) 린다 해밀턴과 아놀드 슈왈제네거도 나와서 노익장을 과시한단다. 이쯤 됐으면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망신이다. 

단순한 호언장담은 아니었던지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개봉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미래에서 온 슈퍼 솔져 그레이스와 최첨단 기술력으로 무장한 Rev-9의 격돌을 중심축으로 폭주하는 액션신은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참았던 숨을 겨우 내쉴 만하면 더 강한 스펙터클이 몰아친다. 반복되는 광대한 스케일에 자연스레 압도되었다. 관록의 드림팀이 보여주는 액션은 정말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고도 남는다. 

다만 아쉽게도 서사는 2편의 재탕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28년 전에 비해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질 않았다. 게다가 영화 전반에 걸쳐 너무 많은 오마주가 난무하면서 추억에 기댄다는 비난이 그래서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그 추억마저도 소환하기 힘들었던 제임스 카메룬 감독 이후의 작품들을 생각하면 고맙긴 한데, 지금의 청춘들은 1, 2편을 제대로 본 적도 없을 테니 현명한 선택인 걸까. 그래도 오리지널리티를 제대로 계승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이게 추억보정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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