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블랙머니>

▲ '블랙머니' 포스터.

<부러진 화살>(2011), <남영동1985>(2012) 이후 오랜만에 연출로 돌아온 정지영 감독의 기세는 여전히 형형하고 날카롭다. 사회 부조리에 대한 그의 영화적 시선과 화법은 잘 벼려놓은 칼날처럼 폐부를 건드린다.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금융범죄가 소재다. 도대체 얼마를, 어떻게 해 처먹었을까. 

IMF 당시 외국의 금융 하이에나 한 마리가 무려 70조 원에 달하는 은행을 1조7천억 원이라는 푼돈(?)으로 삼켰다. 국민의 세금을 마치 쌈짓돈으로 여긴 책임자들과 이득권자들까지 끼어서 작당 모의한 결과다. 이 때문에 5천만 명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영문도 모른 채 140만 원씩 갈취 당했다. 

바로 이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사건을 다룬 <블랙머니>는 모든 금융범죄가 그렇듯 얽히고 꼬인 게 많아서 영화로 풀기는 쉽지 않은 소재이지만, 잔가지는 쳐내고 단순명료하게 정리해서 보기 좋게 핵심을 드러냈다. 론스타 사건을 전혀 몰랐거나 경제라는 말만 들어도 골치 아픈 사람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영화는 친절하게 차곡차곡 진실을 향해 달려간다. 영화를 연출한 정지영 감독은 ‘쉽고 재미있게’ 만들고 싶었다고 하더니 충분히 성공적이다. 쉽고 재미있게라는 명제 때문에 다소 캐릭터가 스테레오 타입으로 처리된 면도 있지만 그 정도 양보로는 충분히 주리가 남는다. 

지금까지 정지영 영화가 늘 그랬던 것처럼 여운을 남기거나 방점을 찍지 않는다. 오히려 도발하고 각성하기를 권한다. 덕분에 많은 관객이 검색창을 열고 관련 인물을 소환해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사건의 당사자들은 한국근현대사의 다른 배덕자, 매국노들처럼 아무 일 없는 듯 잘 살고 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이게 <블랙머니>라는 영화가 만들어진 이유다. 

역대 최악(질)의 금융범죄라 불리는 론스타사건. 핵심은 간단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감쪽같이 그들만의 세상에서 하이에나처럼 먹고 튀었다. 그리고 지금 론스타 측은 한국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중이고 최종 판결이 아직 남았다. 패소할 경우 수습방법은 또 다시 우리가 낸 세금뿐이다. 분노의 화살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명확해지는 대목이다. 정지영 감독의 각성 주문을 듣고 모두가 눈을 떴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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