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백두산>

▲ '백두산' 포스터.

영화 <백두산>은 제작비는 물론 캐스팅 규모에서도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가장 큰 규모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이병헌, 하정우 쌍두마차에 <나의 독재자> <끝까지 간다>의 각본과 각색을 맡았던 이해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새 장을 열었던 <신과 함께> 2부작의 촬영을 담당했던 김병서 감독의 공동 연출이다. 조합만 보면 ‘서사가 뛰어난 재난블록버스터’를 연상케 한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기대만큼 출중한 구석이 없다. 감독 특유의 긴장감 있는 이야기하는 재주가 드러나지 않는다. 선택과 집중 때문에 이야기의 역할을 의도적으로 약화시켰다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약하다. 정말 이야기를 잘 쓰는 것과 그것을 연출이라는 키를 잡고 스크린에 펼쳐놓은 것은 다른 일이구나라는 걸 깨닫는다. 서사를 잘 만드는 것과 잘 구현하는 것은 확실히 다른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두산>은 장점이 많은 영화다. 좋은 영화라고 하기에는 어렵지만 재미있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그 재미의 중심은 기대했던 그대로 화려한 볼거리로, 티켓값과 영화를 보는데 투자한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풍성하고 멋지다. 어디선가 한 번은 만났음직한 클리셰가 영화 전반에 포진해 있고 익숙한 만큼 예상 가능한 줄기지만 지루하지가 않다. CG와 음악, 그리고 배우들이 이루어내는 조화는 훌륭하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CG다.

실종된 서사를 보완하듯 CG는 전례 없이 웅장하며 스펙터클 블록버스터의 본분이 무엇임을 보여준다. 평양 시내를 구현해 낸 것도 놀랍지만 백두산 화산 폭발로 인한 지진이 도시를 덮치는 장면은 압권이다. 영화 <백두산>이 어떤 지점에 충실하게 제작됐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CG를 담당한 덱스터 스튜디오의 기술력은 놀라운데 <신과 함께>로 쌓은 공력이 <백두산>에서 폭발한 느낌이다. 이 풍성한 볼거리를 뒷받침하는 음악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빤한 설정과 서사 속에서 오히려 가장 새롭게 보이는 게 이병헌의 눈빛이며 하정우와의 버디 호흡은 입 아플 만큼 좋다.

<백두산>의 부족한 서사는 선택과 집중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블록버스터의 본분을 잊지 않고 관객을 끝까지 끌고 간다. 너무 큰 기대를 갖지 않고 팝콘 무비로 접근하면 128분이라는 시간이 아깝지는 않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