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실비집에서 발견한 ‘사랑’ ‘우리’ 그리고 ‘인생살이’

“언니! 우리가 함 해 볼 게요 맘 편히 다녀오세요.”
“안 돼, 힘들어서 못 쳐낸다. 손님들에겐 미안하지만 하루 문 닫아야지”


보름 전 쯤 이다. 평소 자주 들르는 실비집의 주인과 젊은 여자 두 분이 나누는 대화내용이다. 대충 짐작이 간다. 병원 정기 검진 일을 앞둔 모양이다.

사연인즉 이렇다. 이 집 사장이 몸이 아파 정기적으로 서울의 한 병원에 검진을 받거나, 영 안 좋을 때는 며칠씩 입원을 한다. 그럴 때 마다 가게 문을 닫는 게 안타까웠던 아는 동생들이 사장을 대신해 가게 문을 열어보겠다는 이야기다.

실비집에는 따스한 정이 있다. 우리네 인생살이가 녹아 있다. 손님도 주인도, 모두가 이웃이요 형제요 자매다.

실비집! 오래 전부터 사천과 진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독특한 술집이다. 술값만 받고 안주 값은 공짜다. 맥주 한 병에 4~5천원, 소주는 8천원에서 1만원 정도다. 술이 추가될 때 마다 안주가 계속 나온다. 육류며, 해산물 등 안주가 푸짐하고 다양해 애주가들에게 인기 있는 술집이다.

간판 불이 켜져 있다. 영업을 하는 모양이다. 주인은 안 보인다. 정기검진일은 아니나, 몸이 너무 안 좋아 쉬는 날 동생들이 달라 든 모양이다.

“어! 이 집 사장은 어디 갔소? 병원 갔나?”
“언니가 몸이 안 좋아서 우리가 장사 합니더. 예쁘게 봐 주이소!”


“어이, 보소! 여기 안주 좀 더 주소!”
“아이고! 우짜지예, 그 안주가 지금 다 떨어졌는데!”


오랫동안 영업을 해 온 사장이야 손님마다 어떤 안주를 좋아하는지 훤히 아는 터라 안주 분배(?)를 잘하지만, 신출내기들이라 영 서툴다. 어떤 안주는 일찍 떨어지고, 필요이상 많이 남은 안주도 있다.

“허허! 있는 거나 주소!”
“죄송합니더! 물매기 탕 시원하게 끓여 드릴께 예!”

초로의 중년들, 작업복을 입은 인근 공단의 인부들, 공무원, 학교 선생, 연인들, 축구나 배드민턴 등 동호회원들... 조용하게 머리를 맞대고, 때론 귀머거리동네(?) 이장님 같은 큰소리로 하루의 피로를 한 잔 술에 담아 털어내는 곳. 사람이 있고, 정이 있어 우리가 되는 곳. 우리들 동네마다 있는 작은 선술집 풍경이다.

젓가락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반가움에 어깨를 안고 등을 두들기는 정겨운 모습을 뒤로하고, 담배생각에 밖에 나와 하늘을 본다. 큰놈이나 작은놈이나, 무리별이나 나 홀로 별이나 보이지 않는 선에 이어진 듯 뭇별들은 제각각 빛을 낸다.

'삶이란/나 아닌 그 누구에게/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안도현의 '연탄 한 장' 中에서
어쩌면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리라.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는 선으로 ‘나와 너’가 ‘우리’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생살이 아니겠는가?

뒷날 실비집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씨! 요즘 연탄 한 장 값이 얼마지?”

병원비에 보태라는 동생들의 만류에도 돈 쓸 궁리를 하는 모양이다. ‘무엇을’보다 ‘어떻게’가 생각나는 이 계절에 문득 깨닫는다. ‘아, 이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구나!’
긴가민가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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