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영화 포스터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영화 포스터

[뉴스사천=배선한 시민기자] <시카리오>(각본), <윈드 리버>(각본, 감독)의 테일러 쉐리던의 신작이다. ‘시카리오’를 보았다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꾼인지를 짐작할 테고 ‘윈드 리버’를 봤다면 그 막막한 설원의 절제와 여백을 기억할 것이다. 당연히 멋진 이야기와 관객의 심장을 쥐락펴락할 줄 아는 연출력을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신작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에서는 그의 장기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전작들에서 번득였던 유니크함이나 연출의 밀도는 많이 약해졌고, 마치 화마 위의 얼음처럼 서로 충돌하는 이미지들을 세련되게 조율하던 쉐리던 특유의 개성도 옅어졌다. 다만 별다른 기대 없이 스펙터클에 관전 포인트를 둔다면 그리 나쁘지 않다.

거대 범죄의 증거를 가지고 도주 중인 소년과 트라우마를 지닌 여성 소방대원. 캐릭터 설정부터 스케일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예상대로 영화는 대부분의 힘을 ‘산불’이라는 거대한 재난을 보여주는데 할애한다. 여기에 짜임새 있는 서사만 보태지면 범작의 고지는 넘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고 또 아쉽게도 어정쩡한 스토리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배우들의 연기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니콜라스 홀트는 안정적이며, 안젤리나 졸리는 소방대원의 역할을 통해 기존의 여전사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모성과 여성성을 체현한다. 연기력은 나무랄 데 없이 매혹적이지만 전형적이기도 해서 개성적인 캐릭터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이런 마이너스적 요소는 배우가 아니라 감독이 전적으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영화 또한 감독의 개성이 빛날 때 관객 또한 그 결과물에 매혹된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테일러 쉐리던의 번득이는 개성을 살리지 못한 영화다. 바람이 있다면 테일러 쉐리던의 다음 영화는 하드보일드였으면 한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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