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사남 진분계 마을

진분계숲 아래로 흐르는 계곡 물. 그 빛이 너무나 황홀하다.
진분계숲 아래로 흐르는 계곡 물. 그 빛이 너무나 황홀하다.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진분계 마을 입구에는 오래된 숲이 있다. 숲에 들어서니 우람한 푸조나무들이 쭉쭉 뻗어서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몸통에서 번져 나온 수많은 선의 구불거림에는 자연의 도(道)가 깃들어 있다. 굵은 몸통에 붙은 이끼들이 초록의 융단을 깔고 계절의 춤을 춘다. 개서어나무 몸통을 휘감고 오른 마삭줄은 남해안 특유의 식생을 보여주기도 한다. 

진분계 숲은 남다른 개성을 여럿 지니고 있다. 먼저 낙엽활엽수림으로 울창한 숲의 규모다. 숲에 주종을 이루는 거대한 푸조나무는 남부지방에서도 그리 흔하지 않은 풍경이라 단박에 눈길을 끈다. 숲 언저리에 3개씩이나 있는 돌무더기도 상당히 이례적인 풍경이다. 삼상로 도로변에 하나, 도로 위쪽 숲에 하나, 도로 아래쪽 식당 앞마당에 하나가 있다. 식당 앞에 있는 것은 조그마하다. 이 돌무더기는 보이지 않아 주민에게 위치를 물어보고 갔으나 덩굴풀이 덮여 처음엔 못 알아봤다. 

푸조나무
푸조나무

삼상로 도로변의 돌무더기는 지역의 경계를 나타내는 이정표로 수호령 역할을 했을 터다. 예전부터 경계의 의미가 큰 곳에 돌무더기 탑을 세우는 풍속이 있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왕이 전쟁에서 수곡성(水谷城)이라는 지역에 이르러 돌무더기를 쌓았다는 기록이 전한다고 한다. 고구려군을 쫓아 멀리 온 것을 기념하고 국경의 경계를 표시한 것이다. 예전에 진분계는 삼천포 쪽에서 사천·고성으로 넘어오는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이런 사실은 진주와 경계를 이루었다 하여 붙여진 진분계(晉分界)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도로가의 돌무더기
도로가의 돌무더기

마을 어르신께 여쭈어보니 오래전부터 이 돌무더기들이 숲에 있었는데 당산제를 지낸 일은 없었단다. 당산나무는 산 중턱에 따로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몇 세대 전에 이 돌무더기는 서낭당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서낭당은 주민과 마을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며 동신제를 지내던 오래된 우리의 토속신앙이다. 도로변 돌무더기가 넓은 지역의 경계 표시였다면, 숲 안쪽의 돌무더기는 진분계 마을 안과 바깥을 구분 짓는 경계였을 것이다. 

진분계 숲 돌무더기
진분계 숲 돌무더기

또 진분계 숲 한가운데에는 물이 맑은 샘이 있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 물을 길어다 먹었다. 지금은 뚜껑을 덮어 땅속에 묻혀 있다. 대신 지하수를 팠는데 수질이 아주 좋다고 한다. 쉼터로서 풍요로운 숲과 돌무더기 서낭당, 그리고 생명수 우물을 품어 안은 진분계 숲. 이 숲은 마을의 구심점이 되어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했을 터다. 하지만 마을의 소중한 자연문화유산은 이제 숲속 유원지가 되었구나!

마을 안쪽 실개천에도 예전에 이용했다는 작은 우물터가 남아 있다. 와룡산은 돌산이라 물을 가두지 못해 비가 오지 않으면 실개천은 바싹 마른다. 그런데도 우물만큼은 마르지 않았다 하니. 빗물을 토해내다 천천히 스며드는 와룡산의 석간수는 오히려 옥룡의 눈물이 되었는가 보다. 숲 앞쪽으로는 와룡산에서 발원한 죽천천이 흐른다. 하천을 따라 내려오면 마을 곳곳이 숲을 이루고 있다. 진분계 숲을 시작으로 가천숲, 연천숲, 능화숲, 우천숲이 차례로 나타난다. 크게 빼어나지도 않은 하천의 상류 쪽에 이렇게 숲이 많이 형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개서어나무
개서어나무

마을 위쪽 실개천 다리를 건너 옅은 고갯마루에 섰다. 왼쪽으로 민재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여기 황홀한 자태를 지닌 개서어나무 한 그루 서 있으니! 그 모습이 마치 선계를 알리는 이정표 같다. 아래쪽에 오래된 둥치가 썩어서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나무의 아름다움이 이렇게 기묘한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구나! 자연의 황홀경은 그 끝을 알 수 없으니! 말갛게 피어난 개망초꽃에 배추흰나비 한 마리 날아와 나폴나폴 꿀을 빤다. 

개망초와 배추흰나비
개망초와 배추흰나비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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