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남일대해수욕장

찰싹찰싹 사르르~ 파도의 물결이 만들어 내는 자연의 소리가 감각을 깨운다.
찰싹찰싹 사르르~ 파도의 물결이 만들어 내는 자연의 소리가 감각을 깨운다.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해수욕장이 하마처럼 입을 벌리고 물놀이객을 맞는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눌러앉은 모래톱도 엉덩이를 들썩인다. 휴가철 물놀이 시즌이 돌아왔구나!

장마의 틈바구니를 뚫고 남일대해수욕장으로 달려간다. 입구에는 오래된 민박집 하나 있다. 저 대문간에 얼마나 많은 모래 알갱이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실어날랐을까? 대문 앞에는 무궁화꽃이 피어서 활짝 반긴다. 깜짝 인사를 해야지! 방금 내린 비에 꽃잎은 촉촉하게 젖어 있건만, 꿀벌은 아랑곳없이 밥 먹으러 왔다. 온몸에 허연 꽃가루를 묻히고서 연신 이꽃 저꽃의 꿀샘을 향해 돌진한다. ‘꿀안내’가 제 몫을 다 하는 순간이다. 암술 아래쪽에 꿀샘을 향하여 빨려 들어가듯 한 붉은 줄무늬 말이다. 영어로는 허니 가이드(honey guide)라고 한다. 번식을 위해 곤충을 유인하는 꽃의 생존전략에는 기발한 아름다움이 있다. 

무궁화
무궁화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간다. 물텀벙 같은 먹구름은 바다를 이고 있다. 발걸음을 옮겨 멀찍이 해수욕장을 내려다본다. 모래톱은 허연 가슴을 풀어헤치고, 긴 혀를 내민 파도는 들숨 날숨을 섞어 쉰다. 그사이 물놀이를 즐기는 청춘들의 몸짓이 미쁘다. 저 멀리서 머리를 치켜들고 달려오는 파도는 보드라운 모래톱을 넘지 못한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단숨에 제압하니. 그 경계를 따라 중년의 사람들이 걷고 있다. 그래 우리도 한때는 청춘이었지! 사각사각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모래톱의 보드라운 촉감, 찰싹찰싹 사르르~ 파도의 물결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소리. 감각을 두드리는 부드러운 것들의 포용력! 이것은 무심코 일으키는 생(生)의 작용력이다. 마음에 여유와 안정을 건네주는 치유의 행위이다. 

바다 풍경
바다 풍경

동쪽 절벽을 따라 코끼리바위 쪽으로는 데크로드가 설치되어 있다. 그 안쪽으론 공사 중이다. 갈 수 있는 만큼 다가서 보니 마주치는 식물상에 재미가 묻어난다. 커다란 암반 겉에서 뿌리내린 조그만 천선과나무와 곰솔. 채 자라기도 전에 열매부터 맺어야 하는 생의 고단함이 보인다. 평생 목마름에 시달린 뿌리로 바위를 뚫어야 산다. 생명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해풍이 쉬어가며 온몸을 적시는 바위 벼랑에는 나무들이 발가락에 힘을 주어 버티고 섰다. 그중에 쉬나무와 음나무는 하얗고 누런 꽃을 피워냈다. 이 계절에 드물게 꽃을 피우는 몇몇 나무 중에 하나다. 꽃이 귀한 계절 무더기 꽃을 피워 경쟁을 피하는 것도 하나의 생존전략이라 하겠다. 두 나무는 옛 생활에 요긴하게 쓰인 민속 식물인데, 여기서는 야생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벼랑에 가녀린 참나리꽃이 붉디붉은 꽃잎을 펼쳐놓고 있다. 푸른 바다 빛과 대조를 이루니 그 얼굴이 더욱 또렷하구나! 참나리는 뜨거운 태양 빛을 먹고 사는 극양(極陽)의 식물이다. 그러하니 어찌 붉지 않으랴! 시련은 견뎌내는 자에게 그 보상으로 아름다움을 준다든가? 더 큰 삶의 용기를 준다든가! 

참나리
참나리
음나무
음나무

해수욕장을 가로질러 반대편 산자락에 섰다. 사천의 명물, 코끼리 한 마리가 바다로 들어가고 있다. 신성함의 상징, 코끼리는 어떤 망망대해를 꿈꾸고 있을까? 돌아오는 길 최치원 선생의 동상과 시비를 만났다.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천년 왕조의 재건. 그 원대한 포부마저 놓아버린 유랑길에 여기 또 하나의 발자국을 남겼으니. ‘남일대(南逸臺)’는 최치원 선생이 남쪽에서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이라 한 데서 유래했단다. 시비(詩碑)에는 범해라는 시가 적혀 있다. 이 시는 최치원 선생이 중국에서 신라로 건너오면서 지은 시로 추정하고 있다. 범해(泛海)-큰 바다에 떠서 새롭게 나아간다. “배를 푸른 바다에 띄우니 긴 바람 만 리를 통하였네.” 최치원 선생의 시에는 바다가 자주 등장한다. 피안의 세계와 현실 세계에 무형의 다리를 놓아 만 리를 통하는 바다! 선생은 망망대해를 꿈꾸는 코끼리의 심정을 깨달았을까! 

코끼리바위
코끼리바위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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