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홍보물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홍보물

[뉴스사천=배선한 시민기자] 대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후 폐허가 된 서울에서 오직 ‘황궁 아파트’만 무사하다. 기적일까 지옥일까. (이 무슨 억지 설정이냐 싶은데, 우리는 튀르키에 대지진에서 모두 무너진 가운데 멀쩡한 건물 하나를 본 적 있다) 화려한 라인업을 내세운 여름 텐트폴 대표주자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민낯이자 시민들의 적금통장 역할을 하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재난 영화의 기본공식인 화려한 CG와 볼거리를 내세우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자연재해로 인한 디스토피아적 상황에서도 인간의 욕망은 꿈틀거린다. 단순히 대재앙 앞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본능 그 이상을 묘사한다. 카메라는 인간 본성의 밑바닥까지 서늘하게 훑어 내리고 보는 내내 서늘하다. 단순히 여름 블록버스터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오락용 화법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사실적으로 접근한다. 비피하고 외풍 막을 수 있으면 족할 거라고 여겼던 집은 월세, 전세, 자가, 브랜드 등 계급과 계층을 만든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들의 지옥도는 더 선명해졌다. 마침 태풍이 휩쓸고 간 뒤라 그런지 더더욱 그렇다.

이 환란의 상황을 딱 중심잡고 끌고 가는 일등공신은 짐작했던 대로 이병헌이다. 도대체 그가 연기할 수 없는 캐릭터는 뭘까, 어떤 연기까지 가능할까 궁금해질 정도로 몰입하게 만든다. 더불어 박보영, 박서준은 물론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캐릭터와 ‘착붙’이다. 블록버스트를 기대하고 갔는데 웰메이드 영화 한 편을 감상한 느낌인데, 그렇다고 오락적 요소가 부족하지도 않다. 아마도 올여름 대작 영화 중에는 첫손가락에 꼽힐 듯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여러 장점 중 가장 큰 것은 완성도다. 흔들리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연출의 공이 크다. 재난 영화를 보고 현실을 각성하는 것은 아이러니 같지만 저도 모르게 삶을 돌아보게 한다. 좋은 영화의 힘이다. 엄태화 감독의 차기작이 벌써 기다려진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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