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서포 월등도

월등도는 하루에 두 번, 바닷물이 빠졌을 때만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갯잔디 군락 너머로 트럭이 지나간다.
월등도는 하루에 두 번, 바닷물이 빠졌을 때만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갯잔디 군락 너머로 트럭이 지나간다.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호기심을 가득 안고 섬 속의 섬 비토리 월등도(月登島)를 찾았다. 하루 두 번 물이 날 때만 들어갈 수 있는 전설의 무대다. 물이 최대로 빠지는 간조 시간대를 맞추었다. 사천대교와 비토교를 지나니 명품 굴의 바다가 펼쳐진다. 빽빽한 굴발 너머로 산자락이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서포 명물 굴발
서포 명물 굴발

물길이 열린 월등도 입구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살펴본다. 참골무꽃이 무척이나 반갑게 인사를 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치 않은 작고 귀여운 꽃. 수풀 사이에 오종종한 키를 바짝 세운 채 잔뜩 피어있다. 골무 닮은 꽃들이 층층으로 매달려 호호 입술을 벌리는데, 아주 작은 거미 한 마리 입술에 머물러 있다. 눈길로 마주하는 생명의 어울림엔 ‘자연스러움’이 넘치는구나! 물이 빠진 갯벌 저만치 왜가리가 긴 다리를 세우고 멀뚱하게 쳐다본다. 가까운 곳에서는 갈매기 한 마리가 쳐다보든 말든 부리로 물을 치는 행동을 계속한다. 끔찍이도 낯을 가리는 왜가리와 세상 쿨한 갈매기의 대조. 저들도 서로의 행동을 알고 있을까? 

참골무꽃
참골무꽃

비토섬은 구토지설(龜兎之說), 거북과 토끼 이야기를 다룬 별주부전의 무대로 알려져 있다. 구토설화는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나타난다. 원전은 고대 인도의 불교 설화집 ‘자타카’라고 한다. 불교 전파와 함께 우리나라에도 들어온 것이겠지? 판소리 수궁가로 불리다가 조선 후기 들어 고전소설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다양한 버전으로 퍼져나간 것 같다. 그만큼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던 것이겠지? 무엇이 그렇게 흥미를 끌었을까? 마침 물길이 열린 갯벌 길 위로 트럭 한 대가 지나간다. 이제 슬슬 월등도에 들어 봐야지! 

아주 먼 옛날 월등도에 토끼 부부가 살았다. 어느 날 용왕의 사자 별주부(거북)가 찾아왔다. “용궁에 가면 진귀한 풍경을 보며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네.” “나를 따라 한 번 가보지 않겠나?” 남편 토끼는 거북의 꾐에 빠지고 만다. 부인을 남겨둔 채 거북 등에 올라 용궁으로 갔다. 그런데 용왕의 병을 고치는 데 토끼의 간이 필요하단다. 꾐에 빠진 것을 알아챈 토끼는 소스라치게 놀라지만, 이내 별주부와 차원이 다른 꾀를 내었으니! “아이고~ 이를 어떡하지요?” “저는 간을 뺐다 넣었다 할 수 있는데, 마침 월등도 소나무 그늘에 말려놓고 왔네요.” 간을 챙겨 오겠다며 다시 월등도로 나온 토끼! 거북을 한껏 비웃으며 달아나버린다. 구토설화는 위기에 대처하는 토끼의 지혜와 함께 탐욕과 자만의 위험성도 경고하고 있다.

달맞이꽃
달맞이꽃

노랗게 피어있는 아침의 달맞이꽃을 본다. 달밤에 피어나는 달맞이꽃을 독일에서는 ‘밤의 양초’라 부른다. 촛불을 연상시키는 노란 꽃망울. 오래전 남아메리카에서 건너왔다는 이 꽃에는 묘한 달빛의 향수가 있다. 토끼는 민족 정서에 기대어 달에도 올랐으니 월등(越等)하구나! 해안을 따라 걷는다. 순비기나무가 지천으로 뻗어나가며 보드레한 꽃을 피웠다. 해풍을 이기며 자라난 도톰한 잎은 동글동글 유순하다. 도톰한 잎은 짭쪼름한 해풍이 조직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준다. 수분의 증발을 막고 바람에 견디며 내부 온도 유지도 할 수 있다. 이처럼 해안식물은 거칠게 노출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순비기나무
순비기나무

비토에서도 구토설화의 중심지는 월등도다. 부패한 권력 용왕과 별주부, 지혜의 상징인 토끼! 인간성의 단면을 해학적으로 보여주는 우화소설의 고향 월등도. 섬의 맨 끝에는 마스코트 토끼섬과 거북섬이 마주 보고 있다. 해안가를 걸어 이 자리에 섰다. 물 빠진 거북섬 바닥이 훤히 드러났다. 머리처럼 이고 있는 푸른 솔밭은 자연을 벗 삼은 왜가리의 휴식처다. 경관이 아름다운 이 섬은 거북의 차지가 되었으니. 계수나무 아래 토끼가 방아 찧는 달이 차오른다. 

거북섬
거북섬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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