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천]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질 볼트 테일러 저 / 장호연 역 / 월북 / 2019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질 볼트 테일러 저 / 장호연 역 / 월북 / 2019

[뉴스사천=이해정 사천도서관 마녀책력 독서회 회원] 조현병을 앓고 있는 가족으로 인해 정신질환에 관해 관심이 생겨 뇌신경 해부학을 공부하게 된 저자는 뇌에 관한 여러 뛰어난 연구로 학계에서 인정받고 저명한 상을 받기도 하는 등 학자로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와 다를 바 없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머리에 극심한 통증이 찾아온다. 곧이어 팔다리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창밖에서 들려오는 일상적인 소음들이 서서히 희미해지는 등 몸의 기능들이 하나씩 마비되어 가고, 주치의에게 응급 전화를 걸려고 하지만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를 인식할 수 없고 수화기 너머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등 언어적 능력도 서서히 잃어간다. 다행히도 저자는 제때 병원으로 이송되어 위급한 상황은 넘겼지만 남은 생을 중증 장애인으로 살아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뇌에 출혈이 생기고 뒤이어 서서히 몸과 정신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되는 그 일련의 과정들에 대한 아주 세밀하고 생생한 묘사였는데, 이는 저자가 뇌의 기능, 구조 등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뇌과학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뇌세포가 서서히 피에 잠겨가면서 그 기능을 하나씩 잃어가는 것을 상상하고 있으면 지금 내가 이렇게 걷고, 뛰고, 말하고, 자판을 두드리는 이 행위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참 신비롭고 경이롭게 느껴진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좌뇌와 우뇌의 차이에 관한 것이다. 좌뇌는 이성, 우뇌는 감성을 주관한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뇌에 대해서 나아가 인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저자는 좌뇌에서 출혈을 겪었는데 좌뇌는 언어, 논리, 읽고 쓰기 등과 관련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한다. 이렇게 세계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좌뇌가 손상을 입자 신체의 경계나 감각이 사라지면서 세상 만물과 연결된 듯한 느낌과 함께 지극한 평화로움을 느꼈다는 것이다. 뇌졸중을 치료해서 완치되고 나면 이 느낌을 잃게 될까 봐 아쉽고 두렵기까지 했다고도 한다. 무엇이든 재고 따지고 계산하는 것이 나의 좌뇌가 하는 일이라니, 그래서 그 좌뇌가 멈추면 나는 조건 없는 깊은 평화를 느낄 수 있다니, 나의 좌뇌에게 쉬엄쉬엄 일해도 된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진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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