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박연묵교육박물관이 품은 이야기 ⑧수예와 재봉

아내 위해 정성스레 만든 수예 교본…이젠 귀한 자료
도둑맞은 ‘매표 싱거 미싱’으로 한 맺혔던 지난날
“털고, 닦고, 기름칠하니, 과거사 돌아봐도 마음 후련”

박연묵 관장이 아내를 위해 직접 만든 수예 교본을 소개하고 있다.
박연묵 관장이 아내를 위해 직접 만든 수예 교본을 소개하고 있다.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가정집 주부에게 재봉틀 하나 장만하는 일이 꿈이자 목표이던 때가 있었다. 기성복을 사서 입기 전, 또는 그 이후라도 옷을 물려 입고, 나눠 입고, 고쳐 입던 시절의 이야기다. 박연묵교육박물관에는 그 시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기 뭔고 아나? 수놓는 기계다. 지꾸자꾸. 우리집 할매가 쓰던 긴데, 대가리(=자수기 기계 본체)는 떼서 따로 보관하고 있다. 애들이 어릴 때 이걸로 옷에 문양 넣고 손수건 만들고 했다 아이가.”

박연묵 관장이 자료방 입구에 놓인 나무틀 기계를 가리키며 한 말이다. 이는 곧 자수기다. 자수기의 나무틀에는 먼지가 덜 앉도록 흰 보자기가 덮였다. 보자기에는 꽃과 새가 수놓아져 있다. 박 관장의 부인, 최막달 여사가 직접 수를 놓은 그림이다. 지꾸자꾸는 지그재그(zigzag)의 일본식 표현이면서 수놓는 기계를 일컫기도 한다.

“내가 초등 교사로 일하기 전에 잠시 서울에 있었거든. 그때 안사람한테 수예를 배우게 했어. 우연히 시작했지. 이런 기 다 공부했던 자료라. 내가 보조한다꼬 직접 맨들어 줬지. 이거는 애들 에리(=옷깃) 수놓는 기고.”

그가 꺼내 보여 준 빛바랜 책자에는 다양한 문양의 그림과 이를 설명하는 글이 빼곡했다. 교본을 살 수 없으니, 손으로 직접 그리고 써서 만든 것이었다. <자연 수>, <미싱 수>, <수의 여러 가지 도안>, <부라우스 수의 여러 가지 도안>, <방석 수의 여러 가지 도안> 등 종류도 다양하다. 최막달 여사는 그렇게 서울 삼호재봉수기술학원을 수료했다(1962년 3월).

“언젠가 누가 와서 보고는 이런 기 드물다 쿠데. 이상하게 수예 자료가 전수도 잘 안 되고 귀하다 캐. 그러니 이게 가치가 더 있겠지. 그리고 이거는 할매가 직접 수를 놓은 그림이다. 이걸 보면 옛날 아씨들의 옷맵시를 알 수 있지. 머리를 땋고 나물을 캐고 있으니, 전체적인 복장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기라.”

예전의 교사 모습이 되살아난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재미난 이야기꾼의 모습이랄까. 부인의 작품을 설명하는 박 관장의 모습에 진지함과 흥이 함께 묻어난다.

자수기와 자수 교본에 관한 이야기를 끝낸 박 관장은 자연스레 그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곤 다시 눈을 반짝이며 나무 선반 같은 걸 매만지니, 두 개의 재봉틀 기계가 선반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도둑맞은 재봉틀 대신 위로를 주는 ‘매표 싱거 믹싱’.
도둑맞은 재봉틀 대신 위로를 주는 ‘매표 싱거 믹싱’.

“옛날부터 ‘싱거’라 카면 누구나 알아줬어. 그중에서도 ‘매표’를 최고로 쳤고, 다음이 ‘인표’지. 이게 ‘매표’인데, 어떤 여선생의 소개로 함양까지 가서 싣고 왔다. 이걸 버스에다 싣고, 진주 와서 또 사천 오는 버스에 싣고. 허 참, 나도 어지간하지. 자개를 입힌 이거는 서울서 왔다. 집에 왔던 어느 교장선생이 서울 누이 거라며 직접 실어다 주데. 이사로 버린다 캐서 아까웠다고. 이거는 ‘인표’다.”

박연묵교육박물관이 이래저래 알려지면서 기증을 하는 이도 더러 있다는 게 박 관장의 설명이다. 두 개의 재봉틀도 그렇게 인연이 닿은 셈이다. 여기서 말하는 ‘매표’는 매의 문양이, ‘인표’는 사람의 문양이 있어 붙여진 별칭이다.

“내가 이 매표 싱거에 마음이 가는 이유가 있어. 아주 예전에 어머이가 계실 적에 매표 싱거를 구했던 기라. 사남 구룡마을 부자가 쓰던 건데, 외삼촌 소개로 중고로 우리가 샀어. 그런데 그걸 얼마 못 쓰고 도둑을 맞아삔 기라. 엄청 속상했지. 우리 어머이는 한이 됐어. 그런 일이 있었다 보니 함양에서 버스로 이걸 싣고 왔지.”

아하! 앞서 자수기의 ‘대가리’를 따로 보관한다는 말이 이제야 헤아려진다. 귀한 재봉틀 기계를 도둑맞은 아픈 기억이 있었던 게다. 이 자수기는 그 무렵 삼천포에서 새것으로 어렵게 구했단다.

이처럼 ‘매표 싱거 미싱’에는 아픔이 서려 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그의 자서전 <생의 뒤안길에서>의 부록 편에 나온다. ‘어머니와 싱거 미싱’이란 글이다. 박 관장은 다음과 같이 마음을 표현했다.

“(더 이상)사용하는 가족도 없고 바느질감도 없다. TV나 냉장고에 밀려 애물단지가 된 셈이다. 그래도, 나는 먼지를 털고 닦고 기름도 칠하며 관리하고 있다. 한 세기의 10년을 남기고 살아온 내가 정서도 굳고 메마르고 글솜씨마저 무디지만, 불행한 과거사를 돌아보며 탈고를 하니 마음이 후련하다.”

‘매표 싱거 미싱’을 도둑맞은 큰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며 살아온 세월. 아흔을 맞은 인생 끝자락에서야, 우연히 기증받은 재봉틀을 닦고 기름칠하니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기계만 따로 보관한다는 최막달 여사의 자수기.
기계만 따로 보관한다는 최막달 여사의 자수기.

그나저나 박연묵 관장의 부인, 최막달 여사의 재봉수(=재봉틀로 놓은 수) 기술은 그의 딸들에게로 이어진 모양이다. 큰딸 박추원 씨는 의상학을 전공한 뒤 관련 분야에서 지금도 일하며, 미술대학으로 진학한 작은딸 박향원 씨는 화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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