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의 배우며 깨달으며]

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나뭇가지에서 움이 돋습니다. 생生의 숨결은 자연으로부터 옵니다. 나뭇가지의 끝에서 내적 파문을 일으키며 나직이 기지개를 켭니다. 말라붙어 죽은 듯 보였던 녀석들인데, 참 가당찮은 삶의 기운입니다.

구김살 없는 걸음이 당차기도 하면서 보는 이를 숙연하게 만듭니다. 시절을 읽어 내는 행보가 경이롭습니다. 무엇을 어찌 알기에 나무는 그 같은 행보를 보이는 걸까요. 동토라 부르는 굳고 딱딱했던 땅에서 나무는 무수한 발을 한 번도 빼지 않고 질기게 견딥니다. 북풍한설, 된바람에도 몸만 흔들 뿐 투정부리거나 짜증내지 않습니다. 몰아치는 눈비에도 목피 하나 흐트러짐 없이 온몸으로 받아 안습니다. 나무는 그렇게 인고의 표징으로 겨울을 건넙니다.

나무는 나에게는 영혼의 쉼터입니다. 어릴 적 마당 한 구석에 서 있던 두 그루 포도나무를 잊지 못합니다. 수령이 꽤 되었던 두 나무는 서로 의지하며 사이좋은 이웃으로 지냈을 것입니다. 햇빛도 나누어서 지고, 비가 퍼붓고 엄청난 눈이 내려도 손을 꼭 잡고 버텼을 것입니다. 더위를 씻는 그늘이 되기도 하고 시원한 바람을 불러오기도 했던 나무. 조금씩 익어 가는 포도알은 입안에 군침을 끌어 모으며 성급한 손길을 유혹합니다. 나무는 한 톨 불평 없이 모든 것을 수용하고 모든 것을 포옹합니다.

봄날의 나무는 삶의 새로운 도전을 의미합니다. 나무는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삶의 변곡점임을 일깨워 줍니다. 과녁을 세우고 다시 일어설 기회를 갖게 합니다. 성공과 실패, 어떤 열매를 맺느냐는 오롯이 자신의 실천 의지에 달린 몫입니다. 자신이 선택해서 가는 길은 시종일관 자신이 져야 할 짐이요 책임입니다.

타인을 삿대질하며 핑계 대고 열악한 환경이 문제라며 탓할 수는 없습니다. 나무의 모습이 그와 같습니다. 나무를 어른으로 섬기고 닮으려는 이유가 드러납니다. 지금까지의 삶이 때가 묻어 더럽고 해어졌을지라도, 따스한 봄날 듬직한 나무를 보면서 비틀거리는 자신을 다잡아 봅니다.  

시작한다는 말은 포기한다는 말을 포기해야 뱉을 수 있습니다. 포기와 절망이라는 수렁에서 자신을 건질 수 있는 말은 ‘나는 괜찮은 놈이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독백입니다. 자아를 존중하고 자신의 능력을 믿고 인정한다는 내적 아우성입니다. ‘시작’이란 말은 누구에게나 균등한 힘을 불어넣습니다. 해내겠다는 기대감, 이루겠다는 설렘이 자신감과 함께 담겨 있습니다.

그런 가능성과 희망을 ‘봄’이란 선물로 포장하여 배달해 주는 이가 ‘나무’입니다. 봄은 고장난 인생을 정비하여 바로 세우는 마력을 지녔습니다. 절기상 2월이면 봄을 노래하지만 마음의 봄은 계절과 무관하게 언제든지 품을 수 있습니다.

길을 걷다가 가장자리를 뒹구는 쪼그라든 잎을 봅니다. 봄이 코앞에 닥쳤지만 현실의 표정은 마냥 어둡고 우울합니다. 서민들이 비빌 언덕, 기댈 나무는 어디에 있는지, 입버릇처럼 또 희망을 말해야 하는지, 막막합니다. ‘미래를 믿자. 공동체 가치를 생산하는 정의를 향해 올곧게 나아가자.’ 이런 판박이 외침이 더 이상 헛소리가 아닌 현실이 되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꿈꾸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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