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학술세미나에서 주장.. 황위주 교수 왕복서신 분석

 

2010 구암제 학술세미나가 28일 사천체육관에서 열렸다.
2010 구암제를 마무리하는 구암 학술세미나가 28일 사천체육관에서 지역 유림, 사천 이씨 대종회, 학계 관계자 등 15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세미나는 경북대 정우락 교수의 사회로, 경북대 황위주 교수가 '퇴계와 구암의 왕복서한'을, 한국학중앙연구원 김학수 교수가 '성옹 김덕함의 관료적 생애와 정치적 활동'에 대해 발제했다. 지정토론자로 경상대 이상필 교수와 한국국제대 송준식 교수가 나섰다.

황위주 교수는 이번 주제발표에서 퇴계 이황과 구암 이정 선생이 주고 받은 왕복서신을 통해 구암의 학문적 업적과 퇴계와의 실질적 관계를 분석했다.

실제 구암 이정 선생은 서부경남지역 퇴계학맥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었다. 퇴계학파에서 편찬한 도산급문제현록을 살펴보면, 309명 제자 가운데 3번째에 배치될 정도로 예우를 받았다.

이번 주제발표에서 구암이 청주목사로 부임한 명종8년(1553년)부터 퇴계가 세상을 떠난 선조3년(1570)까지 약 18년동안에 집중적으로 왕복서신을 주고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퇴계가 구암에게 보낸 서한은 140여 통으로, 퇴계문인 가운데 정유일 168통, 조목 156통 다음으로 많은 분량이었으며, 지방관으로 근무할 때 답장 형태로 보낸 것이 대부분이다. 구암이 퇴계에게 보낸 서한은 이보다 많은 양이었음을 추정케 한다. 하지만 3차례 걸친 문집발행에도 서신들이 제대로 수습되지 않아 퇴계문집에 나온 내용으로  분석을 시도했다.

퇴계와 구암 사이의 왕복서한 중 주요내용은 주자학 관련 서적에 대한 정보 교환과 간행 문제 협의였다. 구암은 퇴계를 통해 필요한 많은 책을 빌려볼 수 있었고, 편집, 배포 방법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왕복서한의 절반 가량인 70여 통이 이러한 내용이다. 황 교수는 왕복서한에서 퇴계 역시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책을 많이 얻어 볼 수 있었으며, 자신의 학문을 다듬어 가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퇴계와 구암은 왕복서신을 통해 학문탐색과 관련된 질의와 답변을 나눴다고 밝혔다.

두 사람 사이의 질의응답은 주자학 관련 서적, 특히 구암이 간행 대상으로 삼은 몇몇 주요서적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특정 서적의 글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어구풀이, 문맥설명, 내용해석 등에 집중된 것을 확인했다. 이는 구암이 관념적 이론보다 실증적 해석을 지향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내용이다. 쉽게 말해, 문답결과를 서적 간행에 바로 반영하고자 하는 실용적 목적으로 서신을 주고 받았다는 것.

황 교수는 퇴계가 구암에게 보낸 서신 중 '선물에 대한 감사 인사'가 빈번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구암이 퇴계의 학문적 측면 뿐만 아니라 일상 생계에 있어서도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왕복서한의 내용 중 업무처리에 대한 자문, 처신문제에 충고 등이 많아 두 사람이 인간적으로 대단히 친밀한 관계였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구암 선생은 퇴계 선생을 경제적으로나 심정적으로 후원하고 신뢰한 조력자였다"고 평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사천 구계서원에 1723년에 배향된 성옹 김덕함(1562~1636)에 대해 살펴보는 자리도 있었다. 김덕함은 인목대비에 대한 폐모론에 반대하다 사천으로 유배됐고, 인조 때 청백리 뽑혔던 청백리로 알려져 있다.

김학수 교수는 그의 생애와 학문적 성향을 분석하면서, "혼란하고 위기가 중첩됐던 시대에 자기 주체성을 잃지 않고, 나름의 소신을 따랐던 조선 관인의 전형"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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