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그리움이란......

사천에서 삼천포까지 버스로 출퇴근하는 25분에서 30분가량의 시간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 창밖너머 풍경을 고스란히 느끼며, 어느 때보다 계절을 앞서 느끼면서 하루를 생각하고 정리하는 이 시간이 정말 소중하네요. 간이역과 종착역이 정해져 있는 듯하면서도 아닌 듯하고.

잦은 봄비로 이런 저런 감상은 정해진 시간보다 더 멀리 멀리만 바라보네요.

그러면서 문득 머리를 스치고 가네요.

중2 2학기가 시작될 무렵에 이곳 사천으로 이사와, 굴러다니는 낙엽보고도 웃는다는 고등학교까지, 저를 지탱해 주었던 것은 바로 고향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들으시면 서운하실까?

그렇지만 아마도 그 때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내일 모레면 마흔인 제가 그 시절 그 고향집의 주소를 왜 기억하고 있을까요?

경남 창녕군 창녕읍 말흘리 545번... 너무 쉬운가?

여름이면 멱감고 산딸기 따 먹고, 양파 뿌리 채 뽑아 논물 내려가는 곳에 씻어 한 꺼풀 한 꺼풀 벗겨가며 먹던, 쑥이며 달래, 냉이를 캐러 다니느라 해가 어디 즈음 왔는지, 신을 신었는지 흙을 신었는지 온 산과 들을 휩쓸고 다녔던 고향!

썰매를 탄다, 비료 자루 깔고 얕은 산을 슈-웅 내려오면 따땃한 밤이며 고구마가 누구네 집에서 익어가고, 눈이라도 퍼붓는 날이면 잡지도 못하면서 기어코 오빠 언니들 따라 산으로 산으로 토끼 잡는다고 그냥 좋아서 휘졌고 다녔던 고향...

지금도 도화지 꺼내놓고 고향의 그 시절 구석구석 그릴 수 있는 나.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마을로 뿌연 연기 앞뒤로 내뿜으며 버스가 들어오던 그 길을 잊을수가 없겠지요.

이미 그곳은 예전의 그 모습을 잃은지 오래고, 동네 어르신 몇 분만 계신 그 곳을 전 늘 그리워하고 있네요. 주란, 상연, 윤희, 경숙, 봉식, 경은, 경석, 천식, 봉근, 덕만, 상덕, 상진이.....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은 대학을 그리워하네요.

대학에 들어가면 처음 해보고 싶었던 것. 빨간모자 쓰기. 결국 소원성취를 해서 학교에서 빨간모자로 통하기도 했었는데.... 비오는 날이면 하얀 고무신 신고 학교며 진주 시내를 누비고 다녔던..... 문학회 합평회라도 있는 날이면 다음날 강의 시간까지 문학과 시대를 안주삼아 지치지도 않게 술과 절친을 이루고..... 92년 윤금이씨 살인사건에 아무런 대응없는 학생회에 분노해 대학축제에 예고없이 무대로 올라가 복수가를 불렀던 나의 대책없는 행동들에..... 젊음의 광기 바로 그 자체였을까요?

그래도 어쩌랴, 그게 나였는데....

또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나를 그리워 할 것입니다.

그래도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리고 싶지도 부끄럽지도 후회하지도 않습니다.

어릴적 새해 선물로 받은 양말의 상표를 떼어 이마에 부치고 잠을 잤습니다. 일어나 보니 이를 어째? 온 집안이 난리가 났습니다. 수건에 물을 적셔 떼어 보지만 쉬-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급기야 칼로 조금씩 끌어냅니다. 그렇게 내 이마에는 흐릿하게 그 흔적이 자국되어 남아있습니다. 그래도 내 몸의 일부이고 나인 것을......

그래서 오늘도 신나게 새로운 내 그리움을 만들러 삼천포행 버스를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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