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매향비 앞에 서서 경제환란과 공동체성을 생각한다

▲ 바닷물과 민물이 합쳐지는 곳이 매향의 최적지란다.하지만 지금은 매립이 되어 하구까지는 십수리 더 내려가야 한다.

 

사천매향비에 섰다. 보물제 614호 1387년 고려 우왕 13년에 세워진 비석이다. 축동인터체인지를 나와 가화천 하교를 넘어 흥사리 남해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900미터 지점. 묵곡천 하류유역이다. 매향비라 하니 한글세대인 집사람은 의기 논개의 연장선에서 의기 매향을 기리는 비 정도로 추측하니 자식들 교육 차원에서 데리고 나섰다.

매향은 불교적 의식이다. 향을 묻는 의식, 다시 말해 갯벌에 향나무를 묻어 세월이 흘러 침향목을 만드는 의식이다. 이 묵곡천 어딘가에 침향목이 620여년의 세월을 두고 묻혀 미륵이 올 정토왕국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고려말 무신란으로 국정이 혼란하고 고려후기 사회역시 지방관의 수탈 등으로 민중이 봉기하고 왜구와 북방 홍건적이 노략질을 해대던 시대적 상황에서 민생은 도탄에 빠져있었다. 사천읍과 곤양 정도에 사람이 모여 살던 즈음이니까 이곳 흥사는 비교적 내왕이 적은 곳이었겠다. 또 매향의 최적지는 계곡수와 바닷물이 합류되는 곳이라 하니 이곳에 매향비가 서있음이 이해된다.

지금은 제방이 생기고 농지로 매립이 되어 바닷물을 보려면 10여리쯤 내려가야 하지만 그 시대에는 여기가 하류정도의 위치였겠다. 제법 느런 하구갯벌 어딘가에 침향을 하고 이곳에 비문을 남기어 향촌의 공동체의식의 회복과 향촌의 무사안영을 도모했겠다.

 

▲ 매향비를 끼고 600년이 지난 지금도, 묵곡천은 유유히 흘러간다.

 

미륵신앙은 구복의 희망을 담고 있다. 미륵부처는 자비와 공덕이 헤아릴 수 없기에 향촌사회에서 기복(祈福)ㆍ치병(治病)ㆍ수호(守護) 등을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고려말의 혼란의 고통 속에서도 신앙을 굳게 가지고 계율을 지키며 부처를 공양하거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등 선행을 닦다 보면 복덕이 증가되고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상태가 되어 사람들의 욕망도 사라지고, 그 때 미륵부처가 하생하여 종교적 구제를 완성한다는 논리를 보여준다.


매향은 이 미륵에게 바칠 최고의 공양품인 침향목을 만드는 미륵신앙의 공동체적 궐기인 셈이니 당연 피지배계층이 중심이었다. 무려 4100여명이 모여 행했던 어쩌면 그 시대  최대의 행사였는지도 모른다. 비구와 비구니가 언급되고 승녀가 글을 썼다는 것으로 보아 사천 인근 배방사, 와룡사, 귀룡사,다솔사,운흥사 등의 승녀가 총 망라된 신앙행사였겠다. 현실은 비록 힘들고 고통이지만 천년 뒤에 피어날 은은한 향기의 침향을 기리며 그 때를 위해 사천민 모두가 나선 행사였지 않았을까?.

 

그래서 고려의 불교를 호국불교라 했던가. 오늘에 이르러서도 천년고찰이 늠름히 지키고 있는 긴 세월을 지나  불제자가 아닌 평범한 중생으로서 역사의 줄기를 찾아 내려간다.


지금은 세월에 풍화되어 글씨마저 판독이 쉽지 않으나 그 시대적 상황에서 염원해 마지않았던 소원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어려운 비문이지만 짧은 지식으로 소개해 본다.

 

▲ 600여년의 풍상에 닳고닳아 글씨마져 희미하다. 지금은 보물로 지정되어 누각을 입고 있다.화강암에 매향비문이 202자로 기록되어 있다.

 

<千人結契埋香願王文>                        천인의 향도계원이 미륵을 원하여 매향한


夫欲求无上妙果                                   더 없이 오묘한 결과를 얻고자 한다

必須行願相扶有                                   필히 실천과 기도는 뗄 수가 없고

行无願其行必孤有                               기도가 빠진 실천은 홀로 외로워지고

願无行其願虛設                                   실천이 빠진 기도는 공허하게 서게 됨으로

行孤則果喪願虛則福劣                         외로운 실천은 과실을 잃게 되고 공허한 기도는 복이 약하다

二業雙運方得助( )妙果                         두 업은 같은 운명이라 조력하여야 오묘한 결과를 얻나니


貧道與諸千人同發大願                          소승이 향도 천명과 크게 발원하여


埋沈香木以待慈氏下生龍華三汾             침향을 땅에 묻고 미륵이 하생하여 용화삼회하길 기다리고

持此香達奉獻供養                                매향불사를 공양으로 올려

彌勒如來聞淸淨法悟无生忍成不退地      미륵의 청정법언을 들어 나서 인내함에 물러섬이 없이

願同發人盡生內院訂不退地                   사람마다 내원에 나기를 결의합니다.

慈氏如來見爲我訂預生此國預                미륵께서 우리 약속을 위해 미리 나라에 계셔 예비하시고

在植汾聞法悟道一切具足成其正覺         법언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모두가 구족한 깨달음을 얻어

主上殿下万万歲國泰民安                      하늘에 이르러 임금님 만세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네

達空

 

洪武卄年丁卯八月卄 八日埋                   홍무20년 정묘팔월20일 묻고

刻金用                                                 금용이 새기며

書守安                                                 수안이 쓰다

優婆塞優婆夷比丘比丘尼                       기혼과 미혼 비구와 비구니

都計四千一百人                                    도합 4천1백인의

個中 大化主 覺禪 主上                          대표 대화주 각선이 올리나이다.


혼란한 사회 속에서 불확실의 두려움을 공동체의식으로 극복하려 했던 기복제례가 매향의 의식이었다면 지금도 필요하지 않을까?

 

▲ 매향비가 있는 묵곡천 하구에 비문의 설명문이 서있다. 설명문에는 스님의 이름이 達空으로 되어 있는데 도무지 내 상식으로는 覺禪인것 같다. 이유는 化主란 의식을 집전한 우두머리를 뜻함 때문인데 확실치는 않다.

 2000년 정월 새만금간척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해창갯벌에서는 ‘새만금매향제’가 열렸단다.

갯벌지킴이로 나선 단체가 매향비를 세웠는데, 비문에는 “우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았듯이 후대에 물려줄 갯벌이 보전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비를 세우며 해창다리에서 서북쪽 3백 걸음 갯벌에 매향합니다”라고 썼단다. 소중한 갯벌을 살려 미래세대에게 고이 물려주고자 하는 염원의 매향을 현대에 재현하여 담아낸 것이다.


IMF의 어려움을 금모으기를 통해 눈물겹게 극복한지 십수년, 전세계적 금융위기에 내수와 수출 모두가 어려워져 다시금 대환란을 겪고 있다. 흡사 600여년 전의 내우외환과 지금의 경제난이 다르지 않은 두려움으로 엄습해 오는 요즘 매향의 유혹을 느낀다.


인간의 삶이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기에 생기는 불안일지 모르나 공동체의식의 회복은 지금 무엇보다 필요하다. 매향의 의식만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시대처럼 동일체 의식의 복원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620년 전에 묻혀 가라앉은 침향목을 찾는 심정으로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공동체 의식의 복원의 길이 어디 있을까하고 매향을 화두로 생각을 찾아 나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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