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도 모르는 대출금이 통장에.. ‘검은돈’이라 판단 '즉시이체'

“고객님 계좌가 범죄에 이용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경찰서에 신고를 할 테니 경찰의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금융 관계자 사칭)

“안녕하세요. 경찰입니다. 당신의 ▲▲은행 계좌가 범죄에 이용당하는 것 같다는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검찰에서 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 뒤에 검찰에서 연락이 오면 협조하시면 되겠습니다.” (경찰 수사관 사칭)

“검찰입니다. 선생님의 ▲▲은행 계좌가 금융사기사건에 연루된 것 같습니다. 몇 가지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으니 협조해 주십시오. 지금 갖고 계신 카드를 꺼내서 카드번호와 CVC번호를 불러주시고, 비밀번호도 알려주세요.” (검찰 관계자 사칭)

“검찰입니다. 지금 선생님 계좌를 확인해 보십시오. 아마 정체불명의 거금이 들어와 있을 겁니다. 불법 금융사기에 이용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일단 입금된 돈은 이쪽으로 보내주세요.” (검찰 관계자 사칭)

이상은 전화금융사기, 이른바 ‘보이스피싱’ 중에서도 최신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카드론 보이스피싱’의 한 예다. 이는 지난 7일 경남 사천에서 발생한 실제 피해사례를 재구성한 것이다.

이 사건 피해자는 비교적 젊다고 할 수 있는 의사 A씨다. 그는 이날 오후3시께 금융기관 관계자로 사칭한 사람을 시작으로 경찰, 검찰 관계자라 자칭하는 사람들과 번갈아 전화 통화를 했다.

그리고 별 다른 의심 없이 전화상에서 요구하는 자신의 카드번호와 CVC번호(카드 소지를 확인하는 값, 일종의 보안번호), 비밀번호를 불러줬다.

순간 보이스피싱 사기단은 즉시 ▲▲은행과 연계된 파이낸셜사에 전화를 걸어 카드대출을 신청했다. 대출 금액은 2500만 원. 이 대출금은 A씨 계좌로 들어갔다. 사기단은 잠시 뒤 A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당신의 계좌가 범죄에 이용당하는 증거”라며, 통장을 확인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자신들이 준비해둔 일종의 대포통장으로 돈을 다시 입금시킬 것을 요구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대출한 줄을 전혀 모르는 A씨는 이 돈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여기고는 사기단의 지시대로 돈을 이체시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차로 600만 원을 이체한 뒤 ‘뭔가 미심쩍다’고 여긴 것이다. 그는 곧장 사천읍지구대를 찾아가 사실 관계를 확인했고, 어이없게도 자신이 보이스피싱에 당했음을 깨달았다.

경찰 확인 결과 A씨가 이체한 600만 원은 해당 계좌에서 이미 빠져 나간 상태였다.

이번 사건에서 눈여겨 볼 점은 카드를 이용해 손쉽게 대출 받을 수 있는 ‘카드론’이 범죄에 이용됐다는 점이다. 실제로 카드대출은 기본적인 인적사항과 함께 앞서 언급한 몇 가지 사항만 추가하면 전화 한 통화로 쉽게 가능하다. 본인 확인 절차가 그만큼 허술한 셈이다.

사천경찰서 관계자는 “카드대출을 이용한 보이스피싱 사건은 최근 발생하기 시작한 신종기법으로 우리 관내에서는 처음”이라며 시민들이 또 다른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경찰은, 전화를 끊은 뒤 사기단에 당했다는 느낌이 들 때는 당장 해당 금융기관에 전화를 걸어 입금시킨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지급정지를 요청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는 경찰에 신고한 뒤 경찰에서 은행에 지급정지를 요청하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보이스피싱에 당해 돈을 보내주면 통상 2~3분 안으로 해당 대포통장에서 돈이 인출되기 시작하므로, 최대한 서둘러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충고다.

한편 경찰청은 이번 사건과 비슷한 ‘카드론 보이스피싱’이 잦아지자 카드대출 규정을 강화해 줄 것을 금융감독원에 요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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