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水軍)의 훈련장이자 휴식처였던 군영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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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水軍)의 훈련장이자 휴식처였던 군영숲
  • 박남희 시민기자/숲 해설가
  • 승인 2021.11.2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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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사천의 마을 숲 ⑤

코로나19로 새삼 깨닫는 것이 숲의 소중함이다. 특히나 마을 숲은 역사가 깊으면서도 늘 사람들 곁에 있어서 삶의 희로애락이 짙게 밴 곳이다. 숲 해설가와 함께 사천의 마을 숲과 그 속에 숨은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 편집자-

군영숲은 삼천포대교 아래에 있는 작은 숲이다. 조선 수군들이 이 숲에서 군사훈련을 하고 쉬기도 했다고 하여 ‘군영숲’이라 불린다.
군영숲은 삼천포대교 아래에 있는 작은 숲이다. 조선 수군들이 이 숲에서 군사훈련을 하고 쉬기도 했다고 하여 ‘군영숲’이라 불린다.

[뉴스사천=박남희 시민기자/숲 해설가] 군영숲은 삼천포대교 아래에 있는 작은 숲이다. 고려 말기 우리나라 연안을 자주 침범해 온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삼천포에는 수군 기지가 설치돼 있었다. 수군들이 이 숲에서 군사훈련을 하고 쉬기도 했다고 하여 ‘군영숲’이라 불린다. 숲 규모는 크지 않지만, 바닷가와 접해 있어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나무 아래에서 바다를 즐기기에 최적의 곳이다. 숲 옆으로 이어진 좁은 골목을 따라 걸어가면 멀지 않은 곳에 ‘대방진굴항’이 있으니, 아주 예전엔 군영숲과 굴항숲이 하나로 연결돼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거북선을 타고 거친 훈련을 마친 수군들이 이곳 숲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런데 군영숲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름만큼 궁금하다. 고려 때 삼천포 앞바다는 대방에 구라량영(仇羅梁營)이 설치되어 수군만호(水軍萬戶)가 통수하고 있었다. 구라량의 ‘구라’는 구라도(지금의 늑도)를 말하고, ‘량’은 배가 기항하거나 정박할 수 있는 작은 항구를 뜻한다. 늑도는 고려사에 구라도로 기록되어 있다. 구라는 원래 ‘굴섬’으로, ‘굴레 늑(勒)’ 자를 써 늑도가 되었다. 그러니 구라량은 늑도와 대방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을 일컫는 셈이다.

이 해협은 진주, 사천, 곤양으로 가는 바닷길로서, 고려 때 진영을 설치했다. 수군만호는 꽤 비중 있는 벼슬이다. 따라서 이곳을 수군만호가 통수하고 있었다는 기록만으로도, 고려 때 이 구라량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인근 마도(馬島), 초양도(草養島)는 그 이름에서 ‘병마를 사육하던 곳’이란 추측이 나오는데,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구라량영은 나중에 사량도로 옮겨 갔다. 그런데, 구라량영이 옮겨 간 뒤에도 꽤 오랫동안 사량만호가 아니라 구라량만호라고 불린 듯하다. 세종실록(세종 20년)에는 ‘의정부 병조가 장계를 올려 사량으로 이전한 지 오래되었는데도 사량만호가 아니라 구라량만호로 불러 불편하니 개칭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라고 하는 기록이 있다. 

군영숲에는 팽나무와 느티나무, 말채나무 등이 서 있다. 그중 말채나무가 눈에 띈다. 말채나무는 말의 채찍으로 쓰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말채나무의 옛 이름은 송양(松楊)이다. 소나무와 버드나무를 닮았기 때문이다. 옛 어휘사전 격으로서, 조선 시대 유희가 지은 책 <물명고>에는 ‘나무껍질은 소나무와 같고 목재는 버들 같다. 잎은 배나무와 비슷하고 열매는 갈매나무를 닮았다’라고 기록했다.

말채나무는 말의 채찍으로 쓰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말채나무의 껍질은 소나무처럼 거칠고 마디마디 갈라져 있다.
말채나무는 말의 채찍으로 쓰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말채나무의 껍질은 소나무처럼 거칠고 마디마디 갈라져 있다.

말채나무의 껍질이 소나무처럼 거칠고 마디마디 갈라져 있다. 색깔은 시커멓고 깊고 얕은 조각의 크기도 제각각이라 징그럽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군영숲의 말채나무가 말의 채찍으로 사용되었다면 그것은 마도와 초양도에서 사육하던 병마의 말채찍이었을 것이다. 봄에 한창 물이 오를 때 가느다랗고 낭창낭창한 가지는 탄력성이 좋고 단단하여 말채찍으로는 제격이다. 꿈쩍도 안 하던 말이 말채나무 가지로 툭 치니 비로소 움직였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한다.

말채나무와 무리를 이루고 있는 팽나무는 바닷가 근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이다. 배가 들락거리는 포구(浦口)에는 어김없이 팽나무 한두 그루쯤은 서 있어, 남부지방에서는 팽나무를 포구나무라고 부른다. 팽나무 곁의 느티나무는 가지를 넓게 펼쳐 짙은 그늘을 만들어 준다. 훈련을 마친 군사들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땀을 식혔을 것이다. 

근대화 이후로는 군영숲이 있는 대방마을에 조선소가 많았다. 덩달아 대방마을의 좁은 골목길은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담장이 높던 조선소는 이제 폐선 처리장으로 바뀌었고, 주변으로도 과거에 조선소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흔적만 남아 있다.

군영숲은 조선 수군의 애환과 조선소 노동자들의 고단함을 간직한 곳이다. 이런 이야기를 뒤로하고 최근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고 바다케이블카가 설치되면서, 군영숲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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